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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l 02. 2024

필립 파레노: 보이스

리움미술관

전시 막바지 즈음에 간신히 턱걸이 했다.

그림에 문외한 이라, 사실 클래식한 전시도 어렵지만, 왠지 끌렸다. 한번 꼭 가보고싶었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마련되어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다.


프랑스 작가인 파레노의 보이스는 외부에 있는 센서인 탑(작품명; 막)에서 부터 시작된다. 풍향계 풍속계 습도계등의 감지센서를 달고있는 조형물이 내부의 여러 작품들의 형태나 소리, 방향등에 영향을 준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는 점에서 놀랐고, 리움미술관 전체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만든 작가의 생각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대단하다.

스산한 소리는 덤이다.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이다. 보슬보슬한 주황빛 가루를 사용하여 '겨울'과,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연주소리 또한 간헐적이다. 건반이 몇개 눌린다 싶으면 또 정지한다. 친구가 페달도 밟힌다길래 설마 했는데 폐달까지 계산되어있었다. 여느 연주자가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가서 살포시 어깨에 손을 올리고싶은 그런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외부 감지센서와 연결된 조형물.

빛의 높낮이에 따라 모형이 바뀔 뿐 아니라 주변의 그림자도 함께 변한다. 누군가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인 '내 방은 또다른 어항'이라는 작품이다. 

흔히 볼수있는 헬륨풍선을 사용하였다. 헬륨의 양을 조절하여 부력과 중력이 평형을 이루게 설치해 놓았다. 

질소공기 만큼의 원자량을 가진 물고기들은 꽤나 자유로워보인다. 마치 물고기들이 나를 관람하는 듯 하다. 마찬가지로 외부 센서와 연결된 화면과 소리가 어우러져 꽤나 몽환적이다. 한참을 서 있었다.




"내 이름은,"

이라는 소리가 적막중에 울렸다.(환청아님주의) 수 많은 관람자들 모두 일시 정지해버렸다. 스산하고 산발적인 소리가 뚝 그친뒤에, "내 이름은,"을 세번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소리를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캐릭터가, 자기 자신에 대한 번뇌를 하고있다. 자신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고 버림받았는지, 본래의 자기 목소리는 무엇인지. 그렇다면 본래의 나는 누구일까. 본래의 나는 저 아이와 다른 면이 무엇이 있을까. 

인간이 아닌것이 고찰하는 장면을 보고있자니, 공포심, 가여움, 이질감, 연민등이 교차했다. 

여전히 저곳에서 독백을 하고 있겠지 외로운 프레임에 갖혀서.



사진이 생략되어있으나, 마릴린먼로, 귀머거리들의 집 등의 설치미술 섹션도 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시공간을 표현한 전시섹션.

듣고보니 맞는말같다. 움직이는 벽이 관람자들과 소통하고있다. 아크릴 시계는 본연의 모습대신 그림자로 그 야이기를 대신한다. 물론 어려웠다. 하지만 감각만은 가지고 갈수있는 (아무리 초보여도) 그런 전시였다.

메인 홀의 나선형 계단까지 모두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호불호가 갈리는 전시라고 들었지만, 나는 꽤나 값진 경험이었다고 평하고싶다.

리움이 아니었다면 무생물을 유기체로 변환시키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잔상이 여전하다.


겨우5일 남았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한번쯤 들려보시길 권유한다.

현대미술에 한발 가까워진다는 진부한 이야기보다는, 전시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감각적으로 담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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