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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l 20. 2024

내가 보이면 울어라


엘베 강의 '헝거스톤'이 드러났다

수십 년간 물을 마시러 왔던 여섯 마리의 짐승들은

'내가 보이면 울어라'라는 돌 앞에서

울지 않았다


그 중, 세 짐승은

가뭄에 지쳐 서로에게 발길질을 하였다

발길에 차인 그 짐승은

가뭄을 탓해야 할지 뾰족한 발굽을 탓해야 할지 정신이 아득했으나

이내 깨달았다

엘베 강도 언젠가는 마른다는 사실을

잃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한 짐승은 희미해져 가는 의식이 두려워

강물 대신 커피나무 열매를 뜯어먹었다

열매의 약기운이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대신 피를 소모했다

헝거스톤에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다 말고 양각을 새겼다


끝까지 남아있던 두 짐승은

가뭄의 법을 따르기 시작했다

평화의 시대는 종말 되었음을 직감한 그것들은

함께 나누던 대화를 종결시켰다

말을 아끼고 시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40년 전 행방불명된 등산객의 시체가 떠오르자

말없이 그것을 뜯어먹었다

버쩍 갈라진 강바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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