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침침해졌습니다. 초점 맞추기를 포기하면 한결 너그러워집니다. 당신의 흰머리도 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왠지 나의 침침한 눈도 당신에게 이해받을 거라고 안도합니다.
어제의 울분은 어디로 가고 침침해진 눈 덕분에 겸손을 되찾습니다. 안경점에 들어갈까 생각을 하다가 더듬거리는 눈으로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드문드문 눈이 오는 날 당신과 함께이면 좋을 곳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한참 멀었는데 캐럴이 흘러나옵니다. 캐럴의 베이스소리에 맞추어 트리의 알전구가 흔들립니다. 내 눈이 좋지 않아 흔들려 보이는지, 알전구가 원래 두 쌍인지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과 내가 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 꼭꼭 짚어 헤아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요.
차창밖으로 보이는 차량의 후면등들이 따뜻해 보입니다. 지나가던 점퍼들의 라쿤털이 흐트러집니다. 통유리 한 장으로 안팎이 갈립니다. 겨우 유리 한 장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내게 누군가 그랬어요. 통유리로 된 창이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개인주의의 정점을 찍은 세상일 거라고. 통유리 너머로 내가 무얼 하든 말든, 창밖에, 창 안에 누가 있든말든, 개의치 않는 세상이 온다면 아마 모두들 우리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헛헛한 세상이 될 거라고.
말도 안 된다며, 분식집이, 커피숍이 어떻게 통유리가 되느냐며 걀걀 거리던 그때의 나는, 그 어른의 나이가 되어 유리벽옆에 기대 있습니다. 오늘 충동적으로 구매한 커다란 롱 후리스 집업에 파묻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호호록댑니다. 이곳의 빨대가 종이맛이 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말입니다.
이곳의 통유리처럼 나도 어제 많은 이들에게 무심했습니다. 그제는 많은 이들이 미웠습니다. 사흘 전엔 누군가를 저주했죠. 멋대로 사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욕심을 내는 만큼 내 눈은 멀어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조금은 억울합니다. 그렇다고 내 뜻대로 살아지지는 않는데 말이죠.
그렇게 옅은 미소를 띠며, 침침해진 눈을 가지고, 흰색 후리스점퍼를 입고, 여전히 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조금은 나이 든 모습으로요.
오늘은 그저 이렇게 머물기로 합니다.
흐릿한 눈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곳에서,
겨울과 당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