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몰래 피시방!
내비게이션에게 다음 목적지를 말한다.
그렇게 잘만 알아듣더니 왜 이 상호명은 못알아든는건지, '엄마 몰래 피시방을 가는 법'에 대해 자꾸만 검색하는 내비게이션.
마흔넘어 엄마 몰래 피시방에 갈 일도 없는데 왜 자꾸 방법을 알려주니. 아니, 상호명은 왜 또 저렇게 절묘하게 지어놓은 거야!!! 구시렁대며 갓길에 차를 세워 목적지를 손수 입력했다.
이 동네 6군데 중에 4번째 급습하는 피시방이다. 현재시간 11시 10분. 수업 시작까진 15분 남았고.
한 녀석이 오늘 등교를 하지 않았다. 2년 내리 담임을 맡고 있는 '인연'을 가진 녀석이다. 작년부터 사춘기가 오나 싶더니 올해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교사에겐 예의 바른 친구다. (심지어 나와 농담코드도 꽤 잘 맞는다.) 하지만 그 미묘한 눈빛변화, 수업시간에 헤헤거리는 진중함의 부재, 선생님 저 힘들어요를 입버릇처럼 말하기 시작하더니. 오늘 결국 3시간째 연락이 불통되었다.
나는 보통 이런 경우를 비상사태라 칭한다.
부모님도 아이의 행방을 모르셨고, 나 또한 아이의 행방을 모르는 상태. 게다가 아동실종 골든타임 3시간을 넘어가는 상태.
십오 세나 되는 녀석 3시간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웬 소란이냐고 생각하는 독자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최악의 상태에 대비하고 움직이는 것이 최선. 게다가 어머님과 며칠째 냉전 중이라는 이야기를 접수하고 엄마 몰래 피시방 간 녀석의 절친을 불렀다.
지구젤리(아이들이 좋아하는 최상급젤리다)를 잔뜩 쥐어주고, 현재 가있을만한 곳을 불?으라고 다독이니, 피시방을 줄줄이 읊어댄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전화번호를 검색하니 죄다. 업체요구로 미제공. 심지어 알바몬에 들어가서 검색해도 전화번호가 안 나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키를 들고 나왔다.
1. 당장 외출해야 하는데 출장을 상신해야 했고,
2. 전화번호를 의. 도. 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피시방들에 대한 저의가 궁금하였으며(아니 왜????)
3. 피시방을 다 뒤져도 이 녀석의 행방이 묘연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 이 와중에 내 수업을 대신 들어가 줄 동료교사도 없다는 점
5. 내가 형사인지 교사인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는데 오늘이 정점이구나
그밖에 불안 분노(ㅋㅋ미안하다 00아)의 감정들을 데리고 피시방을 총 5군데 돌기로 마음먹고 시동을 켰다.
동네 골목은 또 왜 죄다 주황색 실선인지 주차할 곳이 없어서 (차라리 뛰어올걸) 동선이 더 길어졌다.
**피시방에서 가출청소년 찾는 법
1. 차 가져가지 말기. - 어차피 밀집해 있어서 차가 애물단지가 됨
2. 벌컥 문 열고 들어가서 수색하지 말기 - 아르바이트생에게 정중히 사전예고
3. 보통 구석에 혼자 앉아있음 안쪽부터 뒤지기(뒤지기??)
4. 아이가 빈맥을 일으킬 수 있으니 냅다 소리치지 말고 살며시 다가가기.
5. 끈기를 가지고 여러 군데 들르기.
조용히 구석에서 총질을 하는 녀석을 발견했다 결국.
다정하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니, 이미 심계항진 탈진해 보임.
"마저 게임 끝내라" (파티원 존중차원) 웃으면서 이야기했는데도 입을 다물질 못한다. 맙소사.
여하튼 우리 도련님을 검거하여 그렇게 학교로 데리고 왔다. 고마운 건 순순히 검거에 응해주셨다는 점이다.
몇 마디 나누고 부모님께 인수인계? 하여 일단 귀가시켰다.
요즈음 나 자신의 내면적 갈등으로 번뇌가 안쪽으로 수렴하고 있었는데, 날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준 귀한 녀석이다. 한 달간 사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생각할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은 날들이었다. 물론 현재완료형은 아니지만.
그렇게 외골수가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 당장 내가 어떤 교사로 살아가야 하나, 이대로 사는 게 맞는가에 대해 굴로 파고들어 가고 또 파고들어 갈 때. 엄마 몰래 엄마 몰래 피시방에 간 녀석은(오타아님) 그날 나의 엑셀레이터를 잠시 멈춰주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의 고유한 세계에서 “아이들이 나를 구하는 순간”은 늘 있었다.
엄마 몰래 엄마 몰래 피시방에 간 00아.
다음에는 다른 상호명의 피시방으로 출동하길. 되도록 방과 후에.
월요일에 다시 만나면 좀 더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덕분에 오늘도 난 이렇게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