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 첫 번째, 감정에서 구조로

by 한나

난 늘 쫓기며 살아왔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언제부터 발생한 지도 모르는 책임감과 죄책감에 평생을 고치 속에서 전전 긍긍했다.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겐 피해를 줄 것이며, 나는 행복한 권리가 없다는 기저의 생각이, 항상 날 평온과 위험의 경계로 멱살을 잡고 끌고 갔다.

이것은 때로는 자학적인 행위로 나타났는데, 행복한 길을 선택하기보다, 삶의 난이도를 높이는 방향을 선택을 하기도 했다.

나의 OS는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단죄였다.


이런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근원은 아주 다양하다. 어른스럽게 행동해야만 했던 청소년기, 스무 살 때부터 삶의 현장으로 급작스럽게 독립해야 했던 청년기, 누군가를 상처 주고 봉합되지 못했던 끊임없는 죄책감, 이십 대에 엄마가 되어야 했던 나. 그러면서 겪었던 갈등들. 이러한 조각난 사건들은 '내가 행복하면, 내가 욕망을 표출하면 누군가는 크게 다친다'라는 잠재적 결론에 이르렀고,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죄책감을 형벌로 상쇄시키며 지내온 것이다.


나는 나의 OS도 인식하지 못한 채, 위험한 선택 또는 최선의 선택을 해놓고 그것이 실패하던 비소를 띄고, 성공하면 불안해했다. 즉 행복하면 동시에 불안했고, 불행하면 안심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운영체계의 회로의 문제였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이들은 자칫 자신만의 세계에 갇힐 수 있다. 이것은 사고과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은 생각을 안으로만 굴리면 결국 같은 회로를 반복한다. 그 회로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텍스트로 바깥에 던져지는 순간. 사고는 '자기 밖에서' 자신을 보기 시작한다.

자기의 감정을 바깥으로 흘려보낸다는 것은.(그것이 인격체든 비인격체든, 일기장이든 책이던) 나의 감정을 분리시킨다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신경계가 안정되고, 홀가분 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써왔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생각을 정지시키고, 형태를 만들고 다시 나에게 되돌려준다. 그 순간 복잡한 사유는 ‘흐르는 감정’에서 ‘관찰 가능한 구조’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글을 쓰고, 누군가는 결국 고립되고, 누군가는 그것을 예술로 승화한다.

즉, 생각을 쓰는 순간 이미 생각은 재배열되어 구조화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내게 감정의 배출이 아니라, 내 운영체계를 밖에서 해석하는 최소한의 통로가 되어왔다. 다만 그 통로는 어디까지나 나 혼자 만든 가느다란 길이었다. 그 길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를 수는 있었지만, 결국 나는 다시 익숙한 내부 회로로 돌아오곤 했다.


글쓰기는 나를 고립의 방에서 잠시 밖으로 데려다주는 작은 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고치속으로 돌아오기를 번복하였고 그 문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더 넓은 바깥세상으로 나올 기회를— 내 생각을 전혀 다른 결로 되비추어주는, 또 하나의 창을 만나게 된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 ; 당신의 '그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