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어를 할 수 있다면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by 박하

이 편지 같은 글은 너라는 존재가 나에게 찾아온 시점에서부터의 이야기를 시작할 예정이야.

처음 널 만났을 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작디작았던 네가 귀엽기만 했지, 나를 이룰 수 있는 일부가 될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너와 함께했던 순간순간의 서투름 들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라며 너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적어내려 해.



처음 새끼 고양이이던 네가 우리 집에 오게 된 날을 기억해. 그때 내 나이는 10살이었어. 이보다 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 집에 살기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아직도 그리워하던 시절이지만 처음에는 설레었어. 고양이라는 존재가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될 줄 몰랐거든. 오빠랑 나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었는데 학교가 마친 후 들린 문방구에서 나와 나의 오빠를 알고 있는 사장님은 우리 오빠가 학교에 다른 언니가 주운 고양이를 데려가기로 했다고 했어. 그 고양이는 비 오는 날에 구멍 뚫린 하수구 밑에서 어미 없이 형제 한 마리와 같이 비를 맞고 삐약삐약 울고 있었데. 그 언니가 두 마리를 다 데려가 예방접종도 맞혔지만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서 키울 곳을 찾고 있었다나 봐. 설레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간 집에는 박스 안에 삐약거리며 울고 있는 앙상한 새끼 고양이가 있었어.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해 사실인지 확인하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한참을 너를 구경했어. 조심스럽게 박스에서 꺼내놓으니 너는 아직 눈이 잘 안 보이는지 뒤뚱뒤뚱 걷다가 금세 넘어지고는 했어. 그 쪼그만한게 걷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고양이를 원하고 키우게 된 건 아니지만 제법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해. 네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찾아온 게 말이야.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이든 동물 간의 인연이든 어떻게든 만나게 되었고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더더욱. 네가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찾아와 준 게 운명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되네. 그 뒤로 너에게 어떤 걸 먹였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네가 내 뒤를 아장아장 걸으며 쫓아왔던 게 기억나. 나를 엄마라고 생각했던 건지 뭔지 처음에 너는 너를 데려온 오빠가 아닌 나를 더 쫓아다녔었어. 좀 크고 나서는 집에 더 붙어있는 오빠와 더 친해졌지만. 새끼였을 때의 네가 뒤뚱거리며 내 뒤를 쫓아다니는 게 좋아서 일부러 이유 없이 집안을 돌아다녔었어.

아 참, ‘나리’라는 이름은 오빠가 지은 거야. 뜻은 모르겠어. 길고양이들을 이유 없이 나비야라고 부르는 것처럼 큰 의미는 없던 이름이라고 생각해.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귀여운 이름을 지어줄걸이라는 후회가 있지만 그래도 ‘나리야’라고 부를 때 날 보는 표정이 이름이랑 정말 잘 어울렸어. 너도 마음에 들었기를 바라!



하찮은 변명을 하자면 그 당시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주변에 하나도 없었고 내가 너무 어렸어. 물론 오빠도 어렸고, 그래서 새끼일 때 마냥 귀여워하다가 조금 덩치가 커지고 사료를 주기 시작할 때 종종 사료를 주는걸 자주 까먹었었어. 정말 멍청하지? 그때 처음 네가 우리에게 화를 내고 하악질을 했던 거 같아.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네가 화를 내니까 울면서 이유가 뭐냐고 졸졸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했었지. 엄마가 고양이 캔을 따서 앞에 놔주니까 너는 화를 내면서 허겁지겁 캔을 비웠어.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미안하던지. ‘나는 내 입속만 중요한 이기적인 애야!’라는 생각을 했어. 절대 사료통을 비워두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계기가 됐어.



먹는 걸 얘기하다 보니 너는 어렸을 때에 딱히 식탐이 없었던 고양이 었단 걸 말해주고 싶네. 다른 집 고양이들과 달리 말이야. 어쩌면 네가 정상인 건가? 너는 보통 사료를 먹을 정도만 먹는 날씬한 고양이었지.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어서는 식탐은 훨씬 많아졌잖아, 식탁 위에 뛰어들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도 살은 오히려 빠져가는 게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 만약 어렸을 때처럼 네가 식탐이 없었다면 정말 걱정 많이 했을 거야.

그때 즈음 처음 느끼게 된 거 같아. 네가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수 있구나 나는, 이렇게 사소한 거에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구나. 우리 엄마가 나를 볼 때 이렇게 생각했겠지,라고 말이야. 하하


너는 취향이 확실했어. 씹는 게 불편하고 질긴 것들은 냄새만 몇 번 맡아볼 뿐 잘 먹지 않았지. 그래서 고양이들은 생선이라면 뭐든 좋아할 거라는 내 편견이 깨졌어. 너한테 불린 북어포나 말린 멸치 같은 것들은 흥미 없는 음식이었잖아. 그래서 너는 이상한 고양이네라고 생각했어. 내 생일이었나? 무슨 날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가 미역국을 끓였던 날이었어. 아마 네가 온 이후 처음으로 말이야. 그 당시에 우리 집에는 소파가 있었는데 다 같이 국에 밥을 말아서 그냥 손에 들고 먹었던 것 같아. 그런데 네가 그날따라 엄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녀석이 밥하는 엄마 옆에 붙어서 쫓아다니고 야옹야옹 울면서 귀찮게 구는 거야. 왜 저럴까 하면서도 국에 들어간 미역에는 간이 베여 있잖아? 그래서 주지 말자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잠깐 그릇을 손에서 떼자마자 너는 빠르게 소파에 올라와 밥그릇 안에 있는 커다란 미역만 가지고 후다닥 먹는 거야. 그때 정말 가족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서로 쳐다보고 웃었어. 네가 이런 면도 있구나 싶어서 말이야. 그때 이후로 미역국을 끓이는 날이면 나리 너한테 먼저 미역을 주고 다 같이 밥을 먹게 됐지. 솔직히 어렸을 때의 나는 미역을 싫어해서 네가 나보다 더 미역을 많이 먹었을 거라고 생각해.


또 넌 이상하게도 딸기를 좋아했어. 내가 과일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게 딸기인데, 너도 같은 과일을 제일 좋아한다니! 기뻤어. 그런데 너는 재미있게도 빨간 딸기 과육보다 시큼한 초록색 꼭지 부분을 좋아했어. 그 부분 냄새가 좋은지 꼭지를 가까이 주면 입을 벌리고 킁킁거렸어.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핥아먹기도 하면서 말이야. 봄이 오면 엄마는 내가 딸기를 좋아하니까 스티로폼 박스에 든 딸기를 묶음으로 사 오시고, 나는 딸기를 먹으면서 네가 코를 킁킁대면 네가 질릴 때까지 딸기꼭지를 줬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선명해서 다행이야. 어딜 가든 키우는 고양이가 뭘 좋아하냐는 질문에 ‘나리는 미역이랑 딸기꼭지를 좋아해!’라고 말하고 다녔거든.

너랑 관련된 얘기를 하면 나는 꼭 수다쟁이가 되더라. 평소에는 이렇게 말하라 해도 못하는데 니 얘기를 하다 보면 주변에서 말을 돌릴 때까지 주절주절. 지금도 봐봐 너 먹는 얘기만 하는데도 나 혼자 신나서 웃고 있어. 너는 어떻게 먹는 것만으로도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