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어를 할 수 있다면

전하고 싶은 이야기

by 박하

오늘은 한번뿐이지만 나리 네가 아팠을 때 얘기를 해보려고 해! 나리 네가 언제 처음 아팠는지는 기억이 나니?

나도 사실 네가 몇 살 때쯤이었는지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네가 혈뇨를 눠서 놀라서 오빠랑 내가 집 앞에 있는 오래된 동물병원에 데려갔던 게 기억이 나

그때의 우리는 동물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너를 키우고 있었어.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지도 않고 말이야. 그때 우리는 왜 억지로 중성으로 만들어야 하지? 네가 그런 걸 원할까? 그런 안일한 생각들로 중성화를 시켜주지 않았어. 나중에 네가 나이가 더 많이 들고서야 아, 어렸을 때 중성화를 시켜줬다면 너나, 우리나 더 편했을 텐데 하고 느꼈어. 항상 후회는 크게 다가오더라.

네가 처음 방광염에 걸렸을 때 집에 있는 제일 큰 나이키 스포츠 가방에 너를 넣고 병원에 데려갔었어. 나에게는 익숙한 길이었지만 너는 워낙에 아기 때 데려왔고 그런 이후에 처음 데리고 나온 거라 많이 무서워했었어. 너를 안심시켜주려고 가방 지퍼를 살짝 열고 손가락을 가방에 넣어놓고 걸어 다녔어. 너는 그래도 무서운지 중간중간 우리를 불렀지만 말이야. 그때 너는 무슨 느낌이었어?


우리 집 앞에 있는 오래된 동물병원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나. ‘수정 동물병원’이라는 병원은 굉장히 작고 오래된 병원이라는 게 느껴졌지만 그 병원의 수의사 선생님은 뭐랄까.. 은둔 고수 같은 느낌? 심각할 것 없다는 듯이 우리에게 방광염인 것 같다 설명하시고는 주사를 놓아주고 약을 처방해주셨어. 그 병원은 조제실에서 약 만드는 소리가 잘 들렸었는데, 요새 병원에서 주는 기계로 포장하는 약 봉투 말고, 손으로 다 포장지를 접어서 그 안에 가루약들을 넣어주셨어. 그 병원은 언제나 가루약을 줬었던 것 같아. 항상 약을 만드실 때 절구 빻는듯한 소리가 났었거든. 그 소리가 되게 안정감이 들었었어. 너는 무서웠겠지만! 어렸을 때 나리 너는 편식도 심하고 약 먹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서 사료나 간식에 가루약을 섞어주면 한입 먹고는 쳐다도 안 봤잖아, 그래서 우리 꽤나 고생했었는데, 기억나? 나중에 식탐이 많아지고서는 약을 간식에 섞어주면 신경도 안 쓰고 먹어서 신기했었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 미각이 이리저리 바뀌듯이, 고양이들도 똑같은가 봐. 그렇지? 나리 너는 저 때 빼고는 잔병치레도 없이 마지막까지 꽤 건강하게 살다가 갔지, 그게 참 고마워. 네가 계속 살이 빠져서 너무 걱정이었는데 병원에서는 종합검진을 해도 건강하다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고만 해서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어, 이렇게 갑자기 살이 빠지고, 털이 막 뭉치는데 정말 나이가 이유라고? 나리 너는 12살 정도밖에 안됐었거든, 인간의 관점으로만 봐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정말로 20살 넘게까지 살아주기를 바랐어. 네가 힘이 유독 없는 날에는 네가 나랑 대화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어, 네가 어디가 아프다면 나한테 아프다고 말해주기를, 아니면 내가 알아챌 수 있는 신호라도 주기를. 모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들을 할 거라고 생각해. 너는 지루해할지도 모르지만 네가 나이가 들었다는 걸 느낄 때마다 네가 살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살아주기를 기도했어. 지금 와서 보면 다 욕심이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잘해줬더라면, 중성화를 시켜줬다면,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줬다면 네가 조금 더 오래 이 땅에 머물러있다 갔을까 싶어서 문득문득 아쉬움과 죄책감이 비집고 올라와.

너도 내가 있는 이 땅에서 멀어질 때 나랑 헤어지는 게 아쉬웠어? 어스름한 새벽녘, 폭신한 이불 위에서 잠을 자다 깬 네가 나한테 해주던 눈인사가 그립네 오늘따라. 오늘은 네가 꿈에 나와줬으면 좋겠다. 보고 싶어. 많이.

(나이 든 반려동물과 함께인 가족분들이 현재를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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