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어를 할 수 있다면

전하지 못한 이야기 2

by 박하

오늘은 네가 어떻게 놀았었는지 얘기해볼까? 네가 나이 들고서는 뛰어놀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똑똑히 기억해!


너는 어렸을 때 햇빛이 잘 비치는 베란다 세탁기 위에서 일광욕하는 걸 좋아했고 우리랑 하는 장난을 좋아했어. 어렸을 때 나는 내 방이 있었음에도 혼자 자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오빠랑 같이 잠을 잤어 물론 너도 같이.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 레이저건? 같은 게 유행했었어. 자질구레한 장난감들. 문방구에서 500원에 팔던 매미 자석, 색깔 구슬, 고무딱지 같은 것들 말이야.

너는 그중에서 레이저 건을 제일 좋아했던 거 같아. 밤이 되면 오빠랑 나는 불을 끄고 핸드폰 플래시 라이트를 켜서 그림자놀이를 했어. 손으로 동물 모양 여러 가지를 만들면서 놀았어. 그땐 그런 사소한 게 재밌었지. 우리가 토끼랑 강아지, 물고기 같은 것들을 만들면 너는 그 앞에 앉아서 뚫어져라 벽을 쳐다봤어 신기한 듯이, 그림자놀이가 끝나면 레이저 건을 벽에 대고 빠르게 움직였어. 처음엔 네가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우연히 알게 됐었지. 오빠가 장난으로 내 눈에 자꾸 레이저를 쐈는데 네가 그때 내 얼굴로 뛰어올랐잖아. 정말 크게 다칠뻔했지만 깜짝 놀란 채로 마무리됐어. 하하 그 이후로 밤만 되면 레이저건으로 정신이 쏙 빠지게 놀았어 너랑. 지치지도 않는지 너는 계속 벽을 타고 그 레이저를 잡으려 애썼어. 레이저가 마치 진짜 살아있는 생물인 것 마냥 덕분에 벽지는 다 벗겨지고 엄마한테 혼났지만 말이야. 하하


너는 푹신한 이불 안에서 우리의 손이 악당처럼 너를 덮치면 너는 바닥에 두 팔 벌리고 누워서 올 테면 와보라지 라는 표정으로 송곳니를 드러냈지. 이건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너를 좀 괴롭혔나.. 싶기도 한데 네가 이불속에 있는 내 팔을 꼭 끌어안고 한참을 뒷발로 찼던걸 생각하면.. 괴롭힌 거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네 그 작고 귀여운 분홍색 코가 흥분한 듯이 커다란 콧바람을 훙훙 내뱉으면. 그게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너는 화가 나도 귀엽고 사랑스럽구나.


너는 이상한 고양이답게 많은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낚싯줄이나, 쥐 모양 움직이는 장난감에는 관심이 없었어. 너는 유독 머리끈을 좋아했어. 가끔 통통 튕기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면 혼자서 머리끈을 이리저리 굴리고 놀고 있곤 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내 옆에 누워서는 내 머리끈을 혼자서 씹고 뜯고 놀았었잖아. 바뀌지 않는 게 있어서 참 다행이야. 머리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더 좋지! 또 너는 어렸을 때 우리 머리카락을 먹곤 했어. 굳이 말이야. 왜인진 모르겠네 지금 생각해도.. 좀 더럽긴 하지만 우리 체취를 좋아했던 거 같아. 너를 배 위에 올려놓고 이불속에서 널 쳐다보고 있음 너는 내 코를 한참을 핥았었는데 가끔 네가 콧구멍에 송곳니를 꽂아 넣은 적이 있었어, 그때는 정말 어이없었어. 뭐하는 고양이야 너는..?


우리는 가을이나 명절이 되면 선물로 들어오는 배를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포장지(망사 모양으로 된 거)를 네 머리나 몸에 입히는 걸 재밌어했어. 자꾸 얘기하다 보니 널 괴롭히는 거 같긴 한데 이건 모든 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다 해보지 않았을까..라고 설득해볼게. 우리만 그런 게 아니야! 정말로!

너는 머리에 익숙하지 않은 포장지를 씌우니까 뒷걸음질 쳤지. 한참을 뒤로 걸었어. 그 포장지가 벗겨질 때까지 우리는 그걸 보고 배꼽 빠져 죽을뻔했어. 너는 왜 도와주지 않고 웃기만 하는지 짜증 났겠지만 말이야. 그 외의 씌워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씌워 본거 같아. 양말이라거나 비닐봉지, 쇼핑백 같은 것 들말이야. 가끔 쇼핑백 같은 것들은 너 스스로 머리를 넣어보다가 혼자 당황하고는 했잖아? 멍청한 짓을 해도 넌 귀여우니까 괜찮아!


그리고 너는 가끔씩 조용히 없어져서 찾아보면 높은 장롱 위에 먼지 가득한 이불더미 속에 들어가 있었어. 어떻게 올라간 거지..? 싶었지만 나중에 네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고양이 점프력에 대해 새삼 알게 됐어. 너는 올라갈 때는 책상을 딛고 올라갔지만 내려올 때는 책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뛰어내렸어. 그리고 나랑 오빠는 그 장롱 밑에서 보통 잠을 잤는데 어느 아침 학교 갈 시간도 되지 않은 푸르스름한 새벽에 누군가 내 귀를 찢은 느낌에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네 발톱이 내 귀에 박혔던 거였어. 너무 아파서 울면서 엄마한테 가서 약을 바르고 다시 잠을 잤어.(왜 다시 잤지..?) 엄마는 화를 내면서 너한테 소리쳤고, 나는 되려 너한테 미안했어. 귀여운 나리야. 나 때문에 혼나서 미안해하면서 말이야. 너는 나를 아프게 해도 밉지가 않았어. 어렸을 때 동네 길 강아지한테 울면서 쫓기던 적이 있었어. 그 개는 내 바지를 물고 한참을 놔주질 않았고 근처 식당 아주머니가 쫓아내 주고 나서야 나는 엉엉 울면서 겨우 집으로 갈 수 있었어. 그래서 그런가 강아지가 짖거나 이빨을 드러내면 나는 쉽게 겁을 내곤 했는데, 이상하게 너는 송곳니도 무섭지 않았어. 위협한다고 내는 하악질이나 목소리들도. 오히려 속상했어. 네가 왜 화가 났는지, 왜 무서워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거든 어린 나는. 이제는 네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은 네가 곁에 없으니. 공허하다. 생명의 존재라는 건 정말로 옆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공백이 생기는 순간 더 선명히 느껴지는 거 같아. 나는 아직도 집에 가면 베란다에서 햇빛을 쬐고 있을 네가 생각나.


아, 너의 어린 시절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너를 너무 귀찮게 쫓아다녀서 네가 핥퀴었던 일도, 자다가 오빠 얼굴로 네가 떨어져서 오빠가 피를 흘렸던 일도 다 기억나지만, 네가 우리를 다치게 했던 기억보다는 오히려 풀벌레 소리 들리는 여름밤에 오빠랑 나리랑 셋이서 어두운 방 안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고 네 살랑 거리는 꼬리, 벽을 다급하게 붙잡던 폭신한 발바닥. 이런 동화 같던 일들만 생각이 나. 나는 네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만 너도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줄까? 네 기억 속에서 우리와의 추억도 꼭 내가 추억하는 것처럼 동화 같기를 바라.


네가 고릉 거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더 듣고 싶네.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 나리.


빗어도 빗어도 나오던 털 뭉치 (털공을 여러 개 만들어서 방 안에서 굴리며 놀다가 걸리면 엄마한테 된통 혼났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