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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드리 Sep 25. 2024

열쇠에 담긴 시간

주머니 속 작은 열쇠. 그 열쇠는 나와 우리 가족의 시간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20년 전, 우리집 대문에는 열쇠 친구가 생겼다. 손에 쥐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그 안에는 우리의 추억이 하나하나 켜켜이 쌓여 있었다.


스무 해를 함께한 주택의 마당은 아이들의 계절을 품은 놀이터였다. 봄이면 텃밭에서 싹이 돋아 오이, 고추, 상추, 가지가 자라듯, 아이들도 그 속에서 파릇파릇 자라났다. 여름이면 마당 한편에 작은 수영장이 놓여, 물속에서 해맑은 웃음이 마치 폭죽처럼 터졌고, 미끄럼틀 위로 내리쬐는 햇살은 반짝이며 우리를 감쌌다.

겨울이면 함박눈이 소복하게 쌓인 마당에서 우리는 눈싸움을 하고, 대문 앞에는 눈사람 가족을 만들어놓았다.  마당에서 보낸 날들은 언제나 따뜻하게 기억된다. 한구석에 앉아 파를 다듬고, 저녁이면 숯불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은 언제나 우리 가족을 감싸 안아 주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났다. 이제 아이들의 발길은 더 이상 마당에 닿지 않았고, 마당과 집은 점점 쓸쓸한 모습이 되어갔다. 아이들은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꿈꾸며 이사를 원해 이사를 결정했다.


열쇠를 손에 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대부분이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열쇠의 따스함을 좋아한다. 늘 나를 반겨주던 대문, 손때 묻은 마당과의 이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스무 해 동안 나와 아이들은 그곳에서 계절을 함께 나누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이제 그 기억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마당이, 대문이, 그리고 그 집이...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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