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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24. 2022

잘 보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어요 (2)

영화관에서 영화 5,000원에 보는 법

영화 <공조2>를 보고 왔다. 재밌었다. 현빈, 유해진, 다니엘 헤니의 케미도 좋았고 무엇보다 전작과 비슷하면서 다른 작품의 분위기와 느낌, 스토리 진행이 훌륭했다. '전작보다 못한 속편'이나 oooo 2, oooo 3가 가지는 한계를 뛰어 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간에 약간의 비약 같은 것들은 있었지만 대중성 있는 영화치고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충분했다고 본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5,000원만 주고 보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가 장애인이거나. 둘째, 중증 장애인을 동반하고 영화관에 가는 경우이다. 나는 경증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와이프와 함께 16,000원에 볼 수 있었다. 완전 이득이었다.


시각장애인이 문화를 향유하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집에 틀어박혀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오디오북을 듣는 일은 할 수 있지만 밖에 나와서 어디를 간다든지 무언가 체험하러 가는 일은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목적지까지 혼자 가는 일부터가 가장 큰 시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관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제도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영화 관람료까지 비싸다면 영화를 보는 일이 더 힘들어질테니까. 여러 개의 장벽 중 하나를 낮춰 준 느낌이다.


나의 경우, 영화관에 갈 때 크게 고려하는 부분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고려 대상은 영화의 국적이다. 한국 영화인지, 외국 영화인지. 당연히 자막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자막은 '눈에 힘 주고 온 몸의 힘을 집중하면 10% 정도 볼 수 있는' 글자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외국어 대사는 못 보고 지나치는 장면같이 스토리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막으로 이루어진 외국 영화는 내게는 이제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도 이러한 자막 문제가 있다. 특히 요새 나오는 영화들은 시대적 배경이나 사건의 스케일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일본어 등이 많이 나온다. 그때마다 자막을 보려고 인상을 쓰다 보면 정말로 인상 쓰게 된다. 영화 설정 상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내가 피곤하다.


그래서 같이 고려하게 되는 두 번째 대상이 좌석 위치이다. 그래도 한 칸 앞으로 가면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게 자막이라, 나는 보통 자막을 고려 안 했을때 D열 정도로 좌석을 예매하고 자막이 많이 나올 것 같은 영화는 C, B, A(!)에서도 본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A열에 앉아 영화를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콘서트에서는 맨 앞 좌석이 제일 좋은 자리겠지만, 영화관에서의 A열은... 목이 뒤로 젖혀 2시간동안 벌 받는 기분으로 영화를 봐야 하는 자리다. 물론 그만큼 자막도 잘 보이니까 좋다. 근데 그냥 내가 피곤하다.


시각이 약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잘 보려고 할 때 다른 사람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나를 컴퓨터에 빗대어 생각하곤 한다. 내 눈은 입력 장치인 키보드나 마우스, 출력 장치인 모니터 같은 거라고. 다른 사람들보다 성능이 나쁜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를 사용하면서 비슷한 속도로 성능을 내려면 결국 CPU나 RAM과 같은 내부 부품들이 좋아야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하루 종일 머리를 팽팽 굴리다 보면 비장애인들처럼 사는 것이 힘들고 버거울 때가 있다. 영화 하나 보는 것만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그러면서 놓치는 대사나 장면도 많은데) 처지가 서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놓친 대사나 장면을 물어볼 사람(대부분의 경우 와이프)이 있고,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사람(거의 대부분 와이프)도 있다. 나에겐 잘 보이지 않는 눈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래도 이만하면 즐겁게 사는 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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