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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Jun 23. 2023

여아선호사상: 딸이면 GO

아들이면 STOP

1. 직장에서 쌍둥이를 임신한 여자 선배분이 있으시다. 나이 마흔에 결혼하시고 마흔둘에 출산을 앞두신 분이지만 쌍둥이라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그녀는 얼마 전,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딸, 맞아요?"

임신 16주에 평소 가던 산부인과에 가서 쌍둥이의 성별이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어느 날 평소 가던 곳이 아닌 다른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초음파 사진을 보던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와 남편은 그 말을 듣고 혼돈의 카오스를 맛보았다고 한다.


2. 우리 집 네 살짜리 딸내미가 다니는 어린이집 같은 반 남자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시부모님이 자주 돌봐주시는데, 며느리(아이의 엄마)에게 둘째를 낳으라고 한단다. 하지만 며느리는 지금 있는 아이가 남자아이라 둘째 생각이 없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혼자 애가 탄다.






위의 두 사례는 현재 아이를 가지려고 하거나, 아이를 임신했거나, 첫째 아이를 낳은 모든 가정의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과거 '남아선호사상'이 지배하던 21세기 이전의 한국 사회에서처럼, 이제는 '여아선호사상'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 변화는 아마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과거와 달리 가정적인 아빠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EX. 주 5일제)이 조금씩 조성되었고, 부모를 부양하는 기준이 물질적 부양에서 정서적 부양으로 트렌드가 옮겨간 것이 이유이지 않았나 싶다. 가정적인 아빠들에게 있어 물론 아들도 좋지만 귀엽고(!) 예쁜(!!) 딸은 집에 좀 더 삶의 비중을 두도록 했을 것이다. 또한 부모님, 특히 '엄마'와 여행(!)도 가고 맛집(!!)도 모시고 가는 딸들의 존재는 정말이지 '아들만 있는 집' 엄마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우리 엄마... 미안)


그리고 요새는, 특히나 신생아가 태어나는 가정에서는 열이면 아홉, 딸을 원한다. 그리고 주된 이유는 '육아의 난이도'이다. 아들을 키운다는 것,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은 최근 많은 엄마들과 예비 엄마들에게 만연한 풍조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요즘 트렌드가 그렇다. 그에 비해 여자아이는 비교적 덜 뛰어다니고, 덜 난리 치고, 덜 시끄럽다. 심지어 동생이 생기면 본인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돌보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아들들은 대체로 그런 거 없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면 만날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으로 부모의 속을 썩게 한다.(우리 부모님... 미안)


그래서 요즘 부모들은 딸을 선호한다. 특별히 아들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는 한 51대 49든, 100대 0이든 여자아이를 갖기를 바란다. 그래서 위의 2번과 같은 사례처럼 첫째가 아들이면 둘째 생각을 아예 접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첫째가 딸이면 상황에 따라 둘째를 고려하기도 한다. 딸이면 GO, 아들이면 STOP인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시대를 살아왔던 부모님들은 이런 세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키우기 힘드니까 안 낳는다니,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태는 반대로 요즘 부모들의 막중한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 명을 키워도 제대로 키우고 싶은 마음, 다른 집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 때문에 이런 풍조가 만연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딸이 아닌 아들을 가졌다고 해서 중절수술을 하는 부모는 없다. 다들, 잘 키우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임신-출산-육아는 현실적인 문제다. 저출산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부모가 키울 여건이 되어야 낳을 텐데, 낳고 기를 여건이 안된다면 STOP 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요즘의 여아선호사상이 가지는 의미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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