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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17. 2023

고요하다

고요

"고요하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고요하다'에서 '고요'를 어떻게 한다는 건지 궁금해진 것이다.


'고요'는 한자라고 생각해서 분명 무슨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한자들 뜻대로 한다면, 그 궁금증은 다 풀릴 거라 여겼다.


그런데, '고요하다'는 한자로 쓸 수 없는 순우리말 '고요하다'였다.

굳이 한자로는 고요할 靜(정) 쓰지만 너무 건조한 느낌이다.

그 외에도 고요할 寂(적), 고요할 寥(요) 자가 있다, 다들 그저 적막한 느낌마저 드는 역시 건조한 단어들이다.

특히 고요할 寥(요) 자가 있으나 이 한자를 '고요하다'라고 적을 때의 그 글자와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냥 고요하다는 한자로 쓰지 못하는 순우리말이다.



고요

1. 잠잠하고 조용한 상태

2. 보퍼트 풍력 계급 0에 해당하는, 바람이 없는 상태.  

                                          (daum 사전)



 '고요'잠잠한 것보다는 활기차고, 조용한 것보다는 차분한 느낌이 든다.


잠잠하다와 조용하다는 그냥 지속적으로 그럴 것 같은데, '고요하다'는 그 다음이 궁금해질 정도로 무언가 기대가 되고, 또 기다려지는 느낌도 있다.

그리고, 잠잠하다와 조용하다 보다는 세련되게 들린다.


고요한 그 느낌이 참 좋다.


하지만 '풍력 계급 0에 해당하는, 바람이 없는 상태'에는 동의가 선뜻 되지 않는다.

높지 않은 숲 속에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짙은 녹색이 묻어 나올 듯 아주 기분 좋은 약한 바람이 불 때, 고요함도 함께 느낄 것 같기에 말이다.

바람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니, 숨 막히는 침묵(沈默)이 '고요'보다는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고요함이 좋다.


그것 누군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좋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작은 휴식 같은 시간일 수 있어 좋다.


하지만, 프러포즈 후 대답을 듣기까지의 그 긴장된 고요는 잠잠하고 조용한 상태도, 바람이 없는 상태도 아닌 처음 느껴본 아주 아주 긴 고요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탯줄을 자른 후 첫 울음소리를 듣기까지의 그 고요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의 첫 만남은 신기하게도 전부 고요로부터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또 축구경기를 하기 전 선수들이 긴장된 마음으로 자기 자리에 서있을 때, 심판의 시작 휘슬을 불기 전 그라운드와 관중석에 내려앉은 기대와 설렘의 그 짧지만 강렬한 고요도 참 좋다.

휘슬과 동시에 그 고요는 깨져버린다.

하지만 그 고요가 없었다면 그 뒤에 오는 함성은 오히려 밋밋해질 것만 같다.

그래서 그 순간의 그 고요가 더 크고 뜨겁게 와닿는 게 아닐까 싶다.


'고요'는 이렇게 변화를 그 속에 담고 있어 새로움에 대한 기대도 동반하고 있는 것 같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캐럴도 '고요'로 시작해서, 인류를 어둠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거룩한 시작을 축복하는 걸 보면, '고요'는 긍정의 변화를 함유하는 단어가 맞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캐럴 속 '거룩하다'도 순우리말인 것 같다.


아무튼, '고요하다'에는 아름다운 시작과 긍정의 변화가 깃든 참 편안하고 기분 좋은 말이란 생각에 그 느낌이 참 좋다.

때론 숨 막힐듯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높여줄 때도 있지만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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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 많이는 말고, 조금만 더 고요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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