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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Jun 09. 2023

자동차 속 시간과 공간

자동차라는 공간이 정말 완전하게 세상과의 모든 소통을 닫게 해 준다.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되었다고 해서, 외롭거나 안타까운 공간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오롯이 나만의 시공간에 충실하게 집중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기회이고 순간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서 간섭받지 않고, 또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 곳.

시간과 공간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곳.

또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 주기도 하는 고마운 물건.

복잡한 세상사들을 잠시 잊게 해주는 휴식 같은 그런 곳이다.


사람과, 또 세상과의 소통이 절실히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쉽게 연결되는 세상에 이런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래서 그런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심으로 요즘 차들이 대부분 덩치를 더 키우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동차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요즘 기본적으로 딸려 나오고, 대부분 다 가지고 있는 자동차 선루프를 신청하지 않았다.

물론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을 선루프를 열고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여름 시원하게 한참을 내리는 빗소리를 내가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어, 밤별들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다지 좋은 스피커가 아니더라도, 차 안에서 듣는 음악 소리는 더없이 세련된 음을 맘껏 내어준다.

좁다는 게 어쩌면 공간을 더 쉽게 완전히 꼼꼼하게 다 채울 수 있어, 정성스럽게 만든 음들을 작은 틈마저도 고스란히 젖게 만드니, 더 멋진 음들을 듣게 해 줘서 참 좋은 것 같다. 

스피커의 울림통 안으로 내가 들어온 느낌인 걸 지도 모르겠다.


신나게 흥얼거릴 수 있는 곡이라면 더 좋을 거다.


딸내미가 초등학교 3-4학년 때쯤, 어디서 듣고 너무 좋다며 따라 부르기 시작한 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나와 둘이서 목이 터져라 차 안에서 부르던 때가 참 좋았다.

사춘기도 이제 다 지나가고 있는 딸과 둘이 자동차를 타면, 마치 우연인 듯 그 노래를 틀고 여전히 반사적으로 그 노래를 함께 부르곤 한다. 여전히 참 행복한 시간들이고 너무 고마운 시절이다.

또 더 신나 목이 터져라 불러도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니 이 공간은 차원이 다른 우리들만의 고마운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Carlos Kleiber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의 운명교향곡(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op.67)에서 끊어지지 않고 바로 3악장에서 4악장 연결되는 그 힘찬 allegro, 그 가슴 터질 듯 웅장한 음들도 아무런 방해 없이 차 안에서 들을 수 있다.

그 순간 차 안에는 빈필도,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베토벤도, 나도 함께 운명적으로 껄껄거리며 웃고 있는 듯싶기도 하다.


또 가끔씩 정경화가 1973년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주곡(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을 차 안에서 듣는다면, 마치 그 흐느끼듯 돌아서며 헤어짐의 아픔마저 함께 위로하며 의지하고, 결국은 극복해 내는 동유럽 젊은 연인이 되어보기도 한다.

Kyung Wha Chung

나는 우리나라가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나라라는 게 참 좋다.

이런 멋진 시공간을 만들 줄 아는 나라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오늘 같은 초여름 조용한 오후에는 큼직한 LP판 앨범 재킷 사진이 너무 매력적인 Charlie Haden & Pat Metheny의 'Beyond the Missouri Sky'앨범의 7분짜리 재즈기타곡 "Spiritual"이 차 안에 은은하게 흐른다면 딱 일 것 같다.

Beyond the Missouri Sky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짧지만 넉넉하게 제공되는 자동차와의 여유로움이 참 좋다.


오늘은 자동차 지붕을 두드리는 굵은 비가 잠시동안만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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