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미륵전이 보고 싶었는지는 기억 속에 없다. 그냥 살아가다 보면 머리에 스치는 보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보고 싶어 진 것뿐이다. 중학교 즈음으로 생각되는 예전 교과서에서 본 시멘트 덕지덕지 발려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보고 싶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거리상 너무 멀어 늘 보고싶다는 생각만 하고 엄두가 나질 않았었다. 그러고나서 오늘 드디어 이른 아침 그냥 떠나기로 하고 여기까지 오고 만다.
여기는 그 보고 싶었던 미륵전이 있는 전라북도 김제(金堤)의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다.
母岳山 金山寺(모악산 금산사)
이름도 낯선 백제법왕 때(599년) 창건되었다고 하니, 1500년 다 되어가는 오래된 사찰이다.
신라이야기가 많았던 사찰들을 보다가 백제이야기가 나오는 사찰을 와보니 이것저것 다 흥미롭다.
백제왕이름도 나오고, 후백제 견훤의 이름도 나오는 걸 보니 여기가 그 옛날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다.
지평선이 보인다는 김제평야지대에 세워진 사찰이라 그런지, 눈이 시원할 정도로 절마당 넓어서 좋다.
금산사 미륵전(金山寺 彌勒殿, 대한민국 국보)
그 넓은 곳에 3층으로 보이는 미륵전이 서 있고,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열반 후 56만 7천 년 후 미래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을 세운 미륵불(彌勒佛)이 계신다. 그 좌우로 협시보살(夾侍菩薩)인 법화림보살(法華林菩薩)과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이 미륵불과 함께 엄청난 규모로 조성되어 계신다. 그 규모만으로도 미륵전의 위용(威容)을 자랑할만하다.
금강계단(金剛戒壇)과 적멸보궁(寂滅寶宮)
미륵전 옆으로 양산 통도사처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과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고, 넓은 규모에 걸맞게 많은 전각(殿閣)들이 지겨울 사이 없이 배치되어 있다.
먼 길을 어렵게 온 길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늘 그리워하던 친구를 아주 아주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게 있어주어 마음 넉넉해지는 그런 순간들이다.
물론 오늘 처음 보지만 너무 보고 싶어 하다 보니, 그냥 오랜만에 그리다 어렵게 만난 그런 느낌이 든다.
이 느낌 참 좋다.
이것이 인연인 것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인연이리라 생각된다.
처음 보지만 낯설지 않고, 또 그리워하기까지 한다면 전생의 그런 인연 말고 더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좋은 인연인 듯하기에 다행스럽고 행복하다.
보기 전에는 설레었고, 보고 나서는 더 기분이 좋아지고 편해진 걸 보면 참 좋은 인연이 틀림없다.
또 이곳이 미래를 생각하시는 미륵불을 모신 전각이라 더더욱 느낌이 좋다.
금산사 미륵전(金山寺 彌勒殿)
미륵전 뒤편 돌 난간에 조심스럽게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또잠긴다.
과거 행동들의 결과는 누군가의 지금과 또 미래의 기억과 생각으로 남겨질 것이다. 또 현재의 행동들의 결과도 누군가의 미래 기억과 생각 속에 저장될 것이다.
과거는 사라져도 그 조각조각들은 현재에 저장되어 기억되는 것이었다. 현재는 사라진다고 해도, 미래 속에 역시 저장되고 있었던 거다.
비록 내 머리와 가슴속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기억하지 않았고 저장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행동과 말과 느낌마저도 누군가는 조금씩 저장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다른 이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기억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었던 거다.
좋은 기억이면 좋겠다.
과거의 결과인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어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든다. 잘 살아왔는지 수많은 것들이 스치니, 조금 어지럽기까지 하다.
하여 잘못된 건 대웅보전에 계신 여러 여래와 보살들께 인사하며 뉘우치니 살펴달라 부탁드렸다.
금산사 대웅보전(金山寺 大雄寶殿)
성당 고해소(告解所)에서 잘못을 고할 때 그렇게 떨였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부터는 먼 훗날 미륵불께서 중생을 구제하실 때 참 잘살았구나 말씀하실 수 있게 더 조심하며 살아야겠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 할 것 같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겨진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여기 금산사 미륵전처럼 말이다.
12월인데도 봄 같은 어느 토요일 오후.
오늘은 먼 훗날 참 설레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을게 틀림없어 행복한 날이다.
다시 여기 금산사에 또 온다면 그때도 오늘처럼 참 많이 반가울 것 같아 돌아오는 먼 길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