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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Dec 25. 2023

양산 백운암에서

명상(瞑想·冥想)

숨이 찰 때쯤 되니 고마운 의자들이 보인다.

있어야 되는 때를 안다는 건 참 고마운 게 틀림없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이들이 있지 않는가.

부모님도 친구도 사랑하는 이도 자식마저도 다들 존재 그 자체만으로 고맙고 든든하다.

백운암 가는 길

꽤 높은 산이라 돌길과 계단 번갈아 가면서 올라야 한다.


그래도 주차를 하고, 산을 오르기 바로 직전 고마운 이가 만든 산행 지팡이가 격려를 하고 있어 든든하기도 하고, 힘드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당부를 하니 조금 두렵기도 하다.

백운암 가는 길 지팡이

통도사(通度寺)에서 가장 높고, 수많은 암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동차로 갈 수 없는 암자로 오르고 있다.


조금은 험하기도 하고 조금은 멀기도 하지만, 지겹거나 괴롭거나 하지는 않다.

그래서 오르는 길에 이것저것 여러 생각들을 한참을 하게 만든다.

백운암 가는 길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불교는 너무 어려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경전 중 가장 짧다고 하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도 그 깊고 심오한 뜻을 짧은 글 속에 함축시켜서 그런지 너무 어려워 어지럽기까지 할 때도 있다.

그 내용 중, 수많은 없음(無)이 혼란스럽고 어렵기만 하다.

거의 포기상태로 그 깊은 뜻은 세월에 맡기기로만 했다.


불교의 핵심이라시던 무아(無我)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이 그저 슬플 따름이다.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 무지 역무득......'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중에서


지혜도 늙고 죽음도 그 다함도 없다.


(無) 연속, 그냥 허무하다는 것 같아, 영원히 다 알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슬퍼질 뿐이었다.

얕은 지식으로 그 깊은 뜻을 욕심내고 있음이 한심하기까지 하고 그 끝은 허망함이었다.


그래도 자동차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암자는 가보고 싶어 이렇게 오르고 있다.


작은 돌들이 길을 만들고, 군데군데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백운암 가는 길

가파른 돌길 위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계단을 나무로 만들어 놓아 고맙게 오르고 있다.


순간, 분명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오르고 있으나, 그 계단은 나무지만 나무가 아니고 계단임을 알았다.


수많은 나무들이 옆에 서 있고, 그 나무들과 같은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오르고 있다.

백운암 가는 길

그 나무는 이제 계단이다.

그런데 그건 나무다.

그렇지만 나무는 아니고 계단이다.


역시 없음은 그리고 또 아님은 없음도 아님도 아니었다.

허무한 게 아니라, 없어진 게 아니라 또 다른 가치로 변해 그 존재를 계속하고 있었던 거였다.


산속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도, 계단으로 단단히 세워진 나무도 다 제뜻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둘은 나무지만 또 나무가 아니었다.


(無)라는 걸 아주 조금 알 수도 있겠다 싶어 기쁜 마음으로 높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암자에 도착했다.


한번 깊게 숨이 차고 한 번은 쉬어야 오를 수 있는 여기는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梁山 通度寺)의 산속암자, 흰구름이 예쁜 양산(梁山) 영축산(靈鷲山) 깊은 산속 백운암(白雲庵)이다.

영축산 백운암

지쳐 헉헉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사람이 그리운 백구는 연신 반갑다고 짓다가 이내 눈을 감고 깊은 명상(瞑想·冥想)에 들었다.


백운암(白雲庵)은 신라 진성여왕 6년(892년) 조일대사(祖日大師)가 창건했다고 하니, 천년도 훨씬 넘은 사찰이다.


통도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리 잡고, 자동차로도 올 수 없어 오히려 조용하고 평화롭다.


여래(如來)를 모신 큰 법당(法堂)과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羅漢殿), 산신을 모신 산신각(山神閣)이 있고, 특이하게 높은 산에 용왕을 모신 용왕각(龍王閣)이 있다.

나한전(羅漢殿)

용왕각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얼지 않고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계속 나오고 있어 목마른 이를 위로하고 있다.

큰 법당의 여래께 인사드리고, 또 한참을 앉았다.

백운암 큰 법당

올라오다 생각난 무(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그럼 무아(無我)는 무얼까.


두렵다.

잘못 알고 크게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닐까 싶어 두려워진다.


그래도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다고 하셨는데, 정답이 어디 있겠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한참을 생각한다.

나한전(羅漢殿), 산신각(山神閣)

무아(無我), 내가 없다는 내가 아니다와 같은 말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나는 꼭 미래의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없어지는 건 아닐 것이고, 지금과 다르게 변화하는 것이다.


지금과 미래의 나는 다르게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은 다 그 존재자체의 뜻이 있는 것이다.

산에 서있는 나무도, 계단이 된 나무도 다 제뜻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와 미래 혹은 과거의 나는 같지만 다르다, 그리고 과거에 나에게는 지금의 나는 변했기에 없는 것이었다.


무아(無我)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변화해 갈 나도 분명 주어진 역할, 그 뜻이 있기에 결코 허망한 게 아닌 것도 알게 되었다.

허무하게 무(無)는 그냥 단순히 사라지는 없다가 아니었다.


하여 제 뜻을 다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 함도 느껴진다.


지금의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은 오롯이 지금의 나를 또 변화하는 미래의 나까지도 사랑 할 텐데 그런 나를 내가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를 사하고 있는 이들에게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나만을 위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정말 나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시선을 더 맑고 긍정적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무아(無我)대하고 보니 스스로에 대한 욕심 불평오히려 허무한 것이 되어 버렸다.

끝없이 변화할 나라는 존재 속에서 그런 것들은 무의미한 집착인 게 맞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은 욕심과 집착들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나에게 주어진 뜻을 최선을 다해 함으로 또 앞으로 주어질 의미 있는 제뜻들도 다 충실히 해낸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틀렸을 수도 있다.

아니 틀려도 괜찮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졌기 때문에 틀려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 허무하게만 느껴졌던 그 수많은 글 속의 무(無)가 이제 고맙게 느껴진다.


조금 더 행복해질 것 같아 안심도 된다.


이것저것 힘들게 생각하다 보니 배가 고프다.

공양시간도 한참 지난 암자 안에 컵라면과 커피, 귤까지 고맙게 놓여있다.


역시 '불법보다 밥이 진리'가 맞다.


여전히 해탈(解脫)이라는 이름의 백구는 깊은 명상(瞑想·冥想)에 들어 평화롭다.

백운암 해탈이(깊은 명상중)

내려가는 길에 나무계단도 여전히 제뜻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무가 아닌 계단으로서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무아(無我) 너무 어렵기만 하다.


여전히 제뜻을 잊은 듯 욕심내며 살아가려 하고 있는 나를 보니 아직 한참을 멀었구나 싶다.


내려오는 길은 왠지 조금 덜 힘들지만 허벅지는 더 무거워져 있다.


차가운 겨울 하늘에 높은구름이 맑게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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