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4살이 되니 내 마음도 시간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체력은 바닥을 치고, 마음의 우울함도 커져만 갔다.
“오빠, 나 요즘 지안이 출산하고 났을 때처럼 또다시 기분이 울적하네.”
“또? 음……. 자기 이제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한데 운동을 해보는 건 어때?”
“운동? 나 운동하기 싫은데……. 만사가 다 귀찮아.”
정말 그랬다.
나는 아이를 등원시킨 후, 시간이 있음에도 모든 것이 귀찮아 소파와 한 몸이 되기 일쑤였고, 늘 똑같은 패턴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마냥 지루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내 청춘이 흘러갈 것만 같았다. 보기엔 멀쩡한데 마음의 병이 나를 지배하는 것은 무섭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그러다 <누워서 걱정만 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짧은 글을 보게 되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언뜻 보기에 게으르고 느긋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당사자의 마음은 늘 불안하고 긴장되어 있다. 때문에 세세한 것까지 계획을 세우게 되고 계획을 지키는 것 자체에 집착하여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와 행동을 나타내어 주어진 과제를 마무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중략) 따라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먼저, 여러 가지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동기나 욕구가 있을 때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겨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하 생략)”
‘어, 이거 내 이야긴데? 그래! 말만 하지 말고,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은 시작하고 움직이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다. 자기 계발과 관련된 영상을 틀어놓고 무작정 러닝머신 위에 몸을 맡겼다. 오랜만에 걸으니 낮은 속도에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욕심내지 않고 40-50분만 걷고 계단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 몸과 마음이 정말 개운하고 상쾌했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내 몸과 마음이 변하는 것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잠시 근무했다. 이후 출산 전까지 국어과외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하원하면 나와 학생들의 시간이 맞지 않았다. 전공을 살려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없는 것에 늘 불만이었다.
‘조금 더 움직여 보자. 조금 더 배울 거리를 찾아보자.’
안 되는 것에 한탄만 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키우는 시간을 가지기로 다짐했다. 틈나는 대로 운동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지루하고 우울했던 나의 일상에 생기가 돌았다. 바빠지니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내가 원했던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활기를 되찾자 가족들도, 주위 사람들도 얼굴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배움의 분야도 좀 더 넓히고 싶었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검색하던 중 우리 동네 유명 독서 논술 선생님께서 근처 도서관에서 <독자에서 작가로>라는 강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른 작가님들과 독자가 아닌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을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실 국어 전공자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 신청을 했고, 단번에 마감된 강좌를 보며 망설이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강의 첫날, 다행히 오빠가 휴가 중이라 여유롭게 수업 시간 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젊지만 경력이 풍부한 강사님,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님들을 보며 조금 놀랐다. 첫 수업을 마치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누군가 말하길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다 보면 새삼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객관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이야기를 쭉 써 내려갔다. 마음이 정말 많이 힘들 때 글을 써보자 생각하고 강의를 들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정리되는 듯했다.
‘내가 원하는 바가 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구나. 내 뜻대로 살지 못한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걸 거의 다 하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정리되자 ‘나는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나. 하고 싶을 걸 왜 할 수가 없나.’ 했던 생각들도 사라졌다.
육아에도 활기가 생겼다. 아이가 제법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놀아주고 돌보기가 종종 힘들었다. 하지만 등원시킨 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아이가 하원한 뒤에 몸은 피곤해도 더 즐겁게 놀아주었다. 돌아보면 내가 육아를 하며 늘 힘들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너무 잘하려고 해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미련을 가져서 그랬던 것 같다. 육아, 살림, 자기 계발을 모두 잘해 내는 만능 슈퍼우먼을 꿈꿨다.
나는 이제 ‘완벽 예찬론자’가 아닌 ‘경험 예찬론자’가 되려고 한다. 육아와 살림, 자기 계발을 통해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모습에 감격하고 즐거워하는 인생을 살 것이다. 그 시절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어느 부분에 조금 더 나아지고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수록 새롭게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집중하며 앞으로도 나는 매일 조금씩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