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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Sep 10. 2023

1987년의 시

1987년 3월 고등학교 국어수업 첫 시간이었다.

그때 수업을 담당하신 국어 선생님에게도 첫 수업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어선생님께서는 간단한 자기소개 후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뭔가 적힌 종이를 꺼내 펼치시더니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주셨다. 시였으니 낭송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으리라.           


홀로서기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서정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          


생각보다 시가 길었다. 시가 길어지니 잠깐씩 집중력을 잃고 딴생각을 했다. 시의 뒷부분은 국어선생님의 낭송하시는 목소리만 들렸다. 그땐 선생님의 낭송 소리보다 시의 내용에 따라 슬픔에 잠기는 듯했다가 심각해지는 등 쉴 새 없이 변하는 선생님 표정을 관찰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시의 내용은 흐릿하지만 <홀로서기>란 시를 읽던 국어선생님의 표정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미 선생님의 표정은 시로 가득 찼다. 시를 읽는 목소리로 시의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시기보다는 뭔가 표정으로 시의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으신가 보다 생각했다. 그만큼 시를 낭송할 때의 선생님의 표정은 심각하고 무거웠다.


첫 국어 수업은 그렇게 시와 그 시를 읽는 국어선생님의 표정으로 가득 채워진 채 끝났다. 1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에 시집을 구입하여 읽었다. 그리고 그 이후 <홀로서기>란 시와 <슬픈 시> 외에 몇 편의 시를  필사하고 이후 대학생이 되어 컴퓨터와 도트 프린터기를 갖게 되고부터는 일일이 입력하여 인쇄하여 친구들에게 보내곤 했다. 밤마다 도트프린터기 인쇄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시끄러운 도트프린터기를 통해 인쇄되어 나오는 시의 글자들을 바라보는 나의 표정도 시를 낭송하시던 국어선생님의 표정처럼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옛날 책을 소개하려고 책을 찾다가 문득 <홀로서기>란 시가 떠올랐다. 정보가 빠르지 않던 그때에도 서정윤의 <홀로서기>란 시집이 지금의 베스트셀러보다 더한 인기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은데 여러 권의 시집 사이에 끼어 있어 책 등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기억을 더듬으며 책장 앞에서 한참을 헤맸다.      


겉표지와 속표지가 노랗게 바랬다. 겉표지와 속지를 넘기면 젊은 시인의 얼굴이 전면을 채우고 있고 시집을 출판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시보다도 길게 인쇄되어 있었다. 보통 시집은 바로 목차와 시부터 시작하는데 먼저 편집인의 긴 서문이 있었다.    뭔가 깊은 사연을 알리고 싶은 듯 진한 글씨의 제목들이 연이어 보인다.      




-<홀로서기>는 어떤 경로로 출판되었는가?

<홀로서기>는 왜 그렇게 커다란 반향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는가?

<홀로서기>의 시인 서정윤은 어떤 사람인가?

<홀로서기>가 지향하는 세계관은 무엇인가?-     


이 제목 아래로 “홀로서기를 출판하는 데 있어서 사실 우리가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를 시작으로 당시 홀로서기의 출판 당시를 회고하는 글이 이어진다.      


시가 출판 되기 전 시인이 대학 시절 대학교지에 발표하면서 카피와 필사본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당시 시집이 출간되지도 않았는데 3년 전부터 독자들이 서점가에서 있지도 않은 <홀로서기>란 시집을 찾았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여러 경로로 수소문하여 겨우 시인을 찾아 출판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맨 뒷장 판권이 인쇄되어 있는 면만 보아도 당시의 이 시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알 수 있다.  1987년 3월 25일 1쇄 발행 후 내가 시집을 구입한 8월까지 20쇄를 발행했다.  


생각해 보니 국어선생님이 3월 첫 국어수업시간에 시를 낭송해 주실 때는 아직 출판 전이었다. 선생님께서도 그 시를 여러 경로로 알게 되어 필사한 시를 갖고 계셨던 거다.      


당시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던 민중시와 대비되는 서정시로 회자되었던 시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 읽어도 시가 살아 있는 듯하다. 시는 늙지 않는데... 이젠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졌는지 인터넷 서점에서는 검색을 해도 다른 책들에 밀려 여러 페이지를 넘겨야 겨우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표지도 바뀌었다.


이 시뿐이겠는가? 그때는 시를 많이 읽었다.      

동갑내기 남편에게도 그때의 기억을 물어보았다.     

 

“혹시 기억나? <홀로서기>란 시...”

“기억나지... 그땐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절이었지.”     


그러더니 요즘 시대에 시를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얘기한다. 당시 국어 선생님보다 표정이 더 진지하다.

      

그때는 시와 소설, 영화 등 우리가 감정을 해소할 매체가 극히 한정되어 있던 시절이었고 지금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빼앗는 매체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 이유이다.

뭐 다 아는 얘기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집과 시를 소개해봤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온통 자기 계발과 성공스토리나 다른 즐거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적어도 내게 보이는 인스타그램의 세상은 그렇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시를 찾고...

시를 읽고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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