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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살 Mar 03. 2023

나는 '빵 만드는 걸' 좋아해 -2.

나는 이게 제빵의 '깊은 빡침 포인트'임과 동시에 매력이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바로 이전 글(나는 '빵 만드는 걸' 좋아해 -1 https://brunch.co.kr/@muksal/5)을 쓰면서 만들던 쌀식빵은 망했다. 말 그대로 망했고, 좀 더 세세하게 말해보자면 반을 가르고는 냄새를 맡고는 과발효된 걸 확인하고 바로 쓰레기통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만, 당시에는 어이가 없던 이유는 '쌀가루의 차이'. 나는 빵의 기본도 모르고 빵을 만들고 있었구나 싶었다.


 예전 TV 식빵 광고에 이런 카피가 있었다. "이게 닭고기야 식빵이야?(https://youtu.be/C5T37tGNCpA ​)" 이렇게 빵이 만들어졌을 때 쫀득하고 탄력 있게 만들어진다는 건 글루텐이 형성이 되었다는 것이고, 이스트나 발효종을 넣고 발효를 하는 것도 볼륨감과 글루텐이 튼튼하게 형성되게끔 한다.


 보통 식빵을 떠올리면 퍽퍽한 식감보다는 식빵 광고처럼 마치 닭고기 결처럼 찢어지고, 꽉 눌러도 스펀지나 라텍스처럼 다시 제모양으로 돌아오는 걸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독일 쌀가루에는 'Glutenfrei'라고 당당하게 적혀있다. 글루텐 프리, 즉 글루텐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들 때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이 나오고 보니 글루텐도 없는 쌀가루로 식빵을 만들겠다고 덤비니 망하는 게 당연했다.


 부풀지 않는다고 발효 시간을 길게 잡았고 그러다 보니, 과발효되어 빵을 가르니 바로 시큼한 냄새가 났으며 빵의 결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쌀로 식빵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쓰는 '강력 쌀가루'에는 글루텐 성분이 들어간다고 한다. 내가 쓴 쌀가루는 말 그대로 그냥 쌀을 간 가루였던 것이다.




독일 현미가루. 글루텐 프리가 전면에 당당하게!


 빵은 망했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과 묘한 희열 같은 게 있었다.(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나오면 안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게 제빵의 '깊은 빡침 포인트'임과 동시에 매력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이유는 적어도 수십 가지는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이유는 있다. 그래서 제빵은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내 앞에 있는 이 반죽을 잘 이해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레시피에서는 스탠드 믹서 기준으로 중속 7분 반죽이라고 해도 내 스탠드 믹서의 성능과 온도 등에 따라서 더 돌려야 할 수도 있고, 5분 반죽만으로도 이미 글루텐 형성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요리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빵을 만든다는 건 특히 경험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집안의 온도도 매번 다르고, 습도도 달라 상황을 봐가면서 밀가루를 더 넣어야 할 수도, 물을 더 넣어야 할 수도 등등의 변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당연히 레시피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있는 반죽의 상태를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이쯤 되면 거의 명장급으로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만, 다시 말해 저는 거의 빵한테 두들겨 맞고 있습니다.)


홈베이킹 - 절망편.jpg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고,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또 새삼 빵을 만들기 시작하다 보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사 먹던 빵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구나 깨닫게 되고, 그 이후로는 빵을 사 먹을 때도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못 느끼던 것들을 느끼게 된다.

 빵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다 보니 빵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니 밀가루며, 이스트며 재료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고,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 것도 빵을 만들어본 경험의 또 다른 매력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초반에 정말 많은 열정을 쏟지만 또 금세 질려버리고 오랫동안 관심을 유지한 것은 거의 없었는데 어쩌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직도 요리에는 큰 매력을 느낀다. SNS 운영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짝꿍의 권유로 '먹살'이라는 계정을 만들게 되었다. 내가 만드는 요리들과 맛있게 먹었던 것들을 아카이브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피드에 영감을 받는 것도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그 관심의 영역이 이제는 빵을 만드는 것에 미쳐, 최근 피드에는 빵 관련해서 올리게 되고, 빵 관련 피드도 눈여겨보게 된다.


 아무래도 평일에 퇴근하고 글을 쓰는 건 버거워, 주말에 보통 글을 쓰게 되는데(주로 일요일 아침) 이때 보통 빵을 발효하거나, 굽는 타이밍에 글을 쓰게 된다. 최근 연달아 식빵을 구웠으나,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 오늘은 소금빵을 만들어보고자 발효하며 이 글을 쓴다. 아무쪼록 이 관심의 불이 쉽사리 꺼지기 않기를 바란다.


 글을 다 쓴 이 시점, 소금빵이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또 빵만드는 것에 빠져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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