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싸우는 동안 권력은 안전해진다.
이 글은 위로를 주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나는 독자의 마음을 달래거나,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의도가 없다.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고자 한다.
사회가 외면하려는 진실,
대중이 꺼려하는 불쾌한 거울을
정면으로 들이밀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개인 심리: 비교라는 중독
하지만 이 비교는 성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끝없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번갈아 느끼게 하는 중독에 가깝다.
SNS 속에서 타인의 행복은 질투와 자책으로 번역되고,
타인의 실패는 은밀한 쾌감으로 소비된다.
여기서 윤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누구도 스스로를 가해자라 부르지 않고,
이 쾌락을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합리화한다.
집단 갈등: 갈라치기의 기술
개인의 비교심리는 집단으로 모이면 혐오로 변한다.
남성과 여성, 세대와 세대, 지역과 계층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자신이 처한 고통의 원인을 상대 집단에게 떠넘긴다.
사회 구조는 의도적으로 갈등을 양산한다.
분열은 통치하기 쉽기 때문이다.
분노는 위로 향하는 대신 옆으로 흘러가고,
대중은 싸우는 동안 권력은 더욱 안전해진다.
정치와 권력: 혐오의 경제학
정치 권력은 비교와 혐오를 자원처럼 소비한다.
언론은 자극적 대립 구도를 확대하고,
정당은 적대와 분열을 동원해 표를 얻는다.
SNS의 알고리즘은 분노를 가장 효율적인 콘텐츠로 만든다.
윤리적 언어조차도 갈라치기의 도구로 전락한다.
선과 정의는 순수한 이상이 아니라,
혐오를 정당화하는 구호일 뿐이다.
구조적 귀결: 불편한 진실
비교와 혐오가 굴러가는 한, 대중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서로의 불행을 먹고 사는 존재가 되었고,
권력은 이 중독을 교묘히 키워왔다.
“화해와 도덕”이라는 가식은 답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게
타인의 불행에 기생하는가를 직시하는 것이다.
그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