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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K Feb 16. 2024

신기루

보이는 것과 보이는 곳

과거에 난 하늘에만 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야 별이라는 것은 단순히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것을

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한 단어에다가 많은 것들을 포괄적인 것을

의미하고 해석할 수 있었을 때에는 이미


            나의 세상이 확장되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한 단어에 여러 의미가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 단어는 바로 ''이었다.





연인들이 알콩달콩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속삭이며

언제나 그랬듯이 밤이 되면 고개를 들고 깨끗한 눈동자에

밤하늘의 을 담고서는 그 순간을 추억한다.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인류애로 가득 찬 마음으로

마음이 항시 공허한 사람들에게 풍족함을 채워주며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별 같은 사람이 된다.


누군가 죽음까지 도달하여도 지켜야 할 것들을

당찬 용기와 자기 확신으로 지켜내며

하늘의 이 된 그 사람을 지켜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한 단어로 이렇게 많은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신비롭고 아름다운 진리였다.


일반적으로 포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

마음과 진심을 담고 그림 같은 표현으로 말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더욱 몽상하며 내가 표현한 말들을

내 머릿속에 있던 도화지에 물감으로

그것들을 힘껏 채색하며 사색에 잠겼다.


그렇게 해서 도화지를 다 써버리면

여유가 없던 일상 속에 나에게 늘 경험과 영감을 선물해 주는

'여행'이라는 고마운 친구에게 도화지를 잔뜩 받아왔다.


그렇게 해서 물감을 다 써버리면

'독서'라는 똑똑한 친구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과 해결책이라는 처방전을 가지고 물감을 처방받았다.


우리의 평화로우면서도 때로는 자극적인 일상 중에

늘 손에 잡힐 듯 말 듯하는 마치

신기루 같은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영감은 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이것은 빛바랜 우리의 생각을 송두리째 뽑아놓는다.


때로는 새가 활기차게 지저귀는 공원에서


때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향긋한 커피가 담아져 있는 머그컵을 들다가


때로는 하루의 일과를 보람차게 마치든 찝찝하게 마치든

하루의 피로 묻은 때를 욕실에서 씻어낼 때 등


여러 상황이 항상 우리의 골을 잡아당겨

새로운 필터를 넣어준다.


이 영감이 오는 때를 우리는

단 한 번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전에 겪은 영감이 오는 행동을 따라 해봤자

또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감뿐만 아니다.


기회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잡기도 전에 행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현대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라고 하던가?


그러면 생각을 바꿔서 준비를 했는데

그 준비가 온전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인가?


그래서 항상 우리는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늘 어떤 무언가를 이미 시작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만전의 상태를 가해야 한다.


여기서 시작이란

자신이 바라는 기회만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자신과 연관이 없더라도

무엇이라도 하나 더 배우라는 소리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을 연구하다가

결국에 지쳐버리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결국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이미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진행 중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거라는 확신을 하지 마라.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그것은

자신의 간절함과 멘탈 문제이다.

그래서 역대 위인들이 존경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운' 이라는 단어와 의미가

괜히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열심히 하였지만 의지를 잃어버려서

자신의 분야에서 도태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에

미련을 가진 채 살아간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확신을 버려야 한다.


긍정과 부정을 서로 조화롭게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긍정의 힘은 어떠한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용기와 도전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준다.


부정의 힘은 조심성과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여기서 포인트는 자기 객관화를 딥하게 하면 안된다.



    우리는 늘 겸손에 대하여 착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그렇지만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다.


겸손은 나 자신을 낮추어 남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다.

칭찬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상대방 뒤에 두지도 앞에 두는 것도 아닌 평등하게

인정하는 태도야 말로 최고의 겸손이다.


겸손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처세가 아니다.

작은 것부터 놓치지 않고 시험하며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경험으로 쌓이며 큰 것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강렬하게 아름다운 장미처럼 성장하고 나면은

주변의 시선과 열등감으로 피곤해질 일은 일절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는 어떤 것에게도

'누가 더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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