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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Oct 10. 2022

45일

월드뮤직 3번 곡

유니온은 아침에 눈을 뜨면 특별한 이유 없이 보채듯이 칭얼거리곤 한다. 물론 어떤 이유가 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도 크다.


- 아침에 유니온이 보채면 침대 위쪽으로 설치해놓은 타이니 러브 모빌을 켜놓는다. 그러면 유니온이 잠깐 동안은 율동 같은 것을 하며 놀곤 한다. 그렇다고 그게 오래가는 것은 아니고, 율동 비슷했던 손발 놀림이 금세 짜증과 힘이 담긴 발차기와 펀치로 변한다. 그리고 칭얼거리는 듯한 울음이 시작된다.

(양다리를 리듬감 있게 번갈아가며 움직이면 노는 것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쪽 다리 중심으로 마치 땅을 찍듯 세차게 접었다 폈다 하면 가스가 차거나 해서 성질이 나고 불편한 것인 듯하다.)


- 즉, 유니온은 모빌에 크게 관심이 없고 있어도 그 관심이 오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종 모빌을 켜놓는 이유는 어떤 면에선, 내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함이다. 있는 그대로의 울음과 비교하여, 모빌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섞인 울음은 날카로움이 한결 누그러진 것처럼 들린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월드뮤직 장르의 3번 곡이다. 내가 좋아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어쨌든 그렇다. 적절하게 트로트 느낌도 나면서,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불렀던 ‘El Condor pasa’ 같은 분위기도 느껴진다.


- 모빌이 켜져 있을 때 유니온이 크게 신나 하는 경우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모빌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유니온 앞에서 춤(이라기보다는 기괴한 어떤 몸동작)을 춰주면 유니온은 매우 신나 한다. 다른 가족이 해주었을 때도 신나 했던 걸 보면, 유니온은 모빌보다 모빌 앞에서 재롱을 부려주는 가족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 이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모빌과 모빌의 음악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유니온보다는 나’라는 결론에 이른다. 내가 모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어야, 유니온이 그런 나를 예능이나 유튜브 방송을 보듯 보며 웃게 될 것이니 말이다.

"기괴한 춤사위로구나!"


- 발행을 앞두고 덧붙임

글을 쓰고 난 후 발행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변화가 있어 내용을 덧붙인다. 앨범 애플리케이션을 찾아보니 유니온이 55일에 돌아가는 모빌에 눈을 맞추고 쳐다보는 영상이 있다. 모빌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일기를 쓴 지 열흘 만에 모빌의 움직임에 관심을 보인 셈이다. 우리는 주로 유니온을 바운서에 앉혀둔 채 모빌을 틀어주었는데, 80일 대 중반 무렵부터 바운서의 원리를 깨우치고는 스스로 엉덩이와 허리를 이용해 반동을 주면서 마치 매달려 있는 모빌을 붙잡으려는 듯 움직였다. 매일매일 움직임이 격해졌고, 이후로는 내가 "발사되겠다."라고 할 수준에 이르렀다. 서정주 시인이 보았다면 너 정도면 달까지도 가겠다고 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묘사는 할 수 없지만, 격한 움직임으로 발생한 참사도 몇 번인가 있었다(위험한 사고는 절대 아니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듣는다면 우습고 재미있을 에피소드이다.). 관심이 없었던 것에 관심이 생기기도 하고, 관심이 옮겨가기도 한다. 요 며칠은 100일 촬영 소품으로 생긴 풍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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