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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Oct 14. 2022

52일과 53일

긴 잠에서 깨어난 유니온에게

52일

아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살인 듯했다. 오늘은 밤에 내가 유니온을 재우고 자겠다고 했다. 아내는 본인이 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하였지만, 내가 하겠다고 거듭 말했고 아내는 거실로 나와 옆에서 지켜보았다.


밤과 새벽에 유니온을 재우는 일을 아내가 해왔다. 때문에 나는 밤잠 재우는 요령이 부족하였고, 유니온도 그런 내가 안고 있는 것이 불편한지 울음을 터뜨렸다. 한 번 터진 울음이 잘 그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울고 있는 유니온을 달래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가고 감정이 격해졌다. 알아듣지도 못할 유니온에게, “아들, 적당히 해, 세상 다 네 것 아니다.”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크게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지금의 사태의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행동하진 않았지만.


결국 아내가 유니온을 재운 뒤 들어가겠다고 하였고, 나는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조금 뒤 유니온을 재우고 온 아내가 나의 기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화가 났다고 하였다. 아내가 몸이 안 좋으니 빨리 해야 한다는 초조함도 있었다. 화가 나서 속으로 유니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가졌는데, 그런 생각을 가진 나 자신이 부끄럽다고도 하였다. 오늘 밤에는 내가 유니온을 재워보겠다고 몇 번이나 말하였는데 그런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였다고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하였다. 신뢰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오늘 너무 피곤해서 얼른 재우고 쉬고 싶어서 그랬다고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사실 나 혼자 일을 벌여놓고 나 혼자 화가 난 일인데, 저렇게 이해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가끔 아내가 잠들어 있어 혼자 유니온을 보고 있을 때에는 유니온이 울어도 전혀 화가 나진 않는다. 그냥 어떤 순서로 남은 일을 진행해야 집안일과 유니온의 불편을 가장 빠르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실행할 뿐이다. 그런데, 아내가 보고 있으니 괜히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났던 것 같다. 결국 유니온이 아니라 나의 문제인데.


다음 날 유니온에게 “아빠가 미안하다.”라고 몇 번을 말했다. 나는 성인임에도 여전히 미숙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지금이야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 그렇지만 언젠가 내가 유니온에게 상처로 남을 기억을 남기는 일도 생길 것이다. 성인이 된 내가, 어릴 때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을 괜히 새겨보며 화내거나 눈물을 흘리곤 하듯이 말이다. 내가 유니온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가급적이면 없었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어떤 일들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떤 포인트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때, 부디 그런 아픈 기억들이, 유니온의 마음에서는 빠르게 옅어져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53일

내가 52일 밤에 저렇게 바보같이 굴고 나자, 아내는 수면교육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내용을 말해주었다. 기존에는 밤과 새벽에 아내가 유니온을 안고, 유니온이 깊이 잠들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는, 안아 재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니, 이런 방법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영상을 통해 이미 다 공부를 마친 아내가, 직접 등을 대고 혼자 잠들 수 있는 교육방법을 익혀서 실천해보자고 이야기하였다.


첫 번째 낮잠은 아내가 진행하였다. 첫 시도였음에도 30분 만에 유니온이 혼자 등을 대고 잠드는 것에 성공하였다. 아내가 어떤 식으로 진행하였는지 요령을 알려주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낮잠은 내가 진행하였다. 졸려하는 단계까지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기에, 유니온이 편안해할 때까지(울음을 멈출 때까지) 자세를 여러 번 바꾸며 달래주거나 안아주었다. 유니온이 눈을 살살 감으며 숨소리가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변할 때, 그렇지만 완전히 잠든 것은 아닐 때(졸려할 때) 침대에 내려놓고 팔다리를 눌러주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유니온은 자신의 등이 침대에 닿은 것을 알고 눈을 뜨고 다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살짝 가슴에 손을 얹어서 눌러주었다. 울음이 너무 격해지면 안아 올리거나 다시 호흡이 편해지고 눈이 감길 때까지 달래주었다. 몇 번을 반복하자, 유니온은 인상을 쓰고 울음을 터뜨리려던 찰나에 표정을 바꾸고 잠이 들었다!


저녁 6-7시가 수면을 시키기에 더 좋은 시간이라는 정보도 들었기에, 이날은 조금 일찍 목욕을 시키고 일찍 재워보기로 하였다. 6시 50분쯤 목욕을 시키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등을 마치고 침대에 눕혔다. 그냥 저렇게 한 번 둬보자고 하였다. 조금 있으니 유니온이 혼자 잠들었다.


그렇지만 이번 수면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깨서 울기 시작하였고, 이번에도 졸려할 때까지만 달래준 후 다시 침대에 눕혔다.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다시 가슴이나 팔을 살짝살짝 눌러주고, 울음이 너무 격해지면 안아 올리거나 다시 졸려할 때까지 달래주었다. 아내는 옆에서 유니온이 울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귓속말로 말해주었다. 측정된 시간을 듣고 나면, 아이가 체감보다 훨씬 짧은 시간 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니온은 분명히 졸려하는 것 같은데도 억지로 감았던 눈을 다시 치켜뜨며, 계속해서 울었다. 마침내 잠들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왔는데, 내가 앉아있던 의자를 빼며 일어나는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깼다. 온몸에서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끝까지 할 수 있을지 좀 불안하기도 하였지만, 유니온이 어떻게 잠드는지 오래 지켜봐 온 아내가 옆에서 거의 다 왔다고 응원해주었다. 울음소리가 점점 처지는 것이 느껴졌다. 더 울 힘이 없는 것처럼 소리가 뚝뚝 끊어져나더니, 유니온은 40분 만에 혼자서 잠이 들었다.


아내와 서로를 보며(불을 꺼서 사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엄지를 추켜올리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가끔 너무 조용한 것이 불안해, 문틈으로 소리를 들으니,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때로는 웅웅 강아지 소리를 내면서 잘 자고 있었다.


그렇게 유니온은 무려 6시간 15분을 내리 잤다!



발행을 앞두고 덧붙임.

그 뒤로 유니온은 가끔 금방 깰 때도 있었지만, 혼자서 등을 붙이고 잠드는 것 자체를 그렇게 어려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잠들기 전에 우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 그때는 “쉬이이”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차분해지면서 잠이 든다.


개인적으로 터득한 “쉬이이” 소리 내는 요령은 아래와 같다(아내는 이것의 명칭이 ‘쉬닥법’이라고 알려주었다.).


1. 강하게 울고 있을 때는 쉬이 소리를 내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소리를 내어야,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그 소리를 듣는다.


2. 실제로 “쉬이”하는 글자를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둥글게 모아 공기가 지나가는 소리를 만들어 주는 식으로 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휘파람보다는 입술을 조금 덜 오므리되, 동굴 같은 데서 바람이 빠져나오는 소리,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창밖으로 들리는 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를 만들어 준다.


3. 너무 몰입해서 침을 흘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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