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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26. 2024

나는 어떤 '분노 유형'일까?

아이와의 관계를 가로막는 부모의 마음속 독이 되는 감정, 분노

분노라는 감정은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는 부당한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다루지 못하면 아이와의 건강한 관계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부모와 자녀의 분노에 대해 조사하고 고민하다 보니, 분노를 표출하는 유형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부모의 분노 유형'을 4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나는 어떤 유형에 해당될까요?     


첫 번째 ‘가짜 분노’ 유형


이 유형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까다로운 기질이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인 과민성을 갖고 태어나지 않아 순하다는 말을 듣고 자랍니다.


성장 후에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사람들에게 성격이 좋다는 평가도 받지요. 특별히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깊지 않아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쉽게 기분이 나빠지고 걱정이 많아지면서 화를 내는 일이 예전보다 잦아졌죠.


이러한 사람들은 갱년기와 같은 신체 및 심리적 변화나 아이들과의 급작스런 분리나 남편과의 관계의 악화 등 환경적인 변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분노지수가 높아진 유형에 속합니다. 


이러한 유형은 분노를 다루는 연습보단 분노라는 감정으로 위장한 진짜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춘기가 된 아이가 부모로부터 자립하려는 시도로 인해 불안과 우울을 느끼면서도 이것을 분노로 표현한다면, 아이는 부모가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럴 경우, 아이에게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죠.     


두 번째 ‘분노 TNT’ 유형


화학 물질인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TNT)은 폭탄의 원료인데요. 이 유형은 말 그대로 특정한 사건과 관련된 기억이나 감정에 불이 붙으면 폭발적으로 분노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해당됩니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며 자주 화를 내거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지는 않았지요.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거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과 같이 충격적인 외상으로 인한 분노를 억압하며 살다가, 이러한 사건과 관련된 기억이나 감정이 연상되면 폭탄처럼 분노가 터지게 됩니다.


평소에는 일상을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 던진 별 의미 없는 말이나 행동이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는 트리거(촉발 원인)로 작용하면, 헐크처럼 변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죠.


아이는 부모가 과거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부모의 분노를 점화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거죠. 그러다 보면 반복적으로 아이가 부모의 심리적 상처를 자극하고, 부모는 그에 대해 분노로 반응하면서, 서로 잘 맞지 않는 관계인 ‘베드 핏’을 이루게 됩니다.      


세 번째 ‘앵그리버드’ 유형


한 때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앵그리버드’ 게임은 화가 난 새가 주인공이죠.

이 유형의 사람은 말 그대로 ‘화를 잘 내는 성격’을 보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어릴 적에 빛이나 소리, 온도나 사람 등 낯선 자극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이러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모에게 무척이나 큰 스트레스가 되죠.


그러니 부모와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높고 성장 후에도 과민한 성향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쉽게 마음이 상하고 우울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자주 느꼈을 겁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기질과 성향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욕구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인간관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 자체가 성격이 되어 화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게 익숙합니다. 


물론 순한 기질이었던 사람이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를 만나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면, 충족되지 못한 욕구로 인해 일상적으로 화를 내는 성격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부드럽고 세심하게 아이의 감정을 어루만지며 대화하는 건 상상할 수 없고, 주로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를 쏟아내며 아이를 윽박지르는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죠.


이전의 글에서 설명한 대로 기질과 애착은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는지와 같이 맥락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까다롭고 과민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비난하거나 지적하는 태도가 아닌 아이의 불편함이 편안해질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면서 이해해 주는 태도를 가진 부모나 친구라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이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감정으로 분노를 선택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성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대화할 때마다 분노하며 의사를 표현해서 아이와의 갈등이 심각하다면, 지금이라도 사사건건 화를 내는 나의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분노의 질주’ 유형입니다.


이 유형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분노가 시작되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유형입니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뇌의 기능적인 문제로 인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학대에 노출되면서 화를 이용해 자신을 방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나 가정폭력을 저지르거나 아이를 방임하는 경우, 아이는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분노로 인해 폭력성을 키우게 됩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내향적인 성격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분노를 터뜨려 파괴적인 행동을 할지 예측되지 않죠.


‘분노 TNT’ 유형과 달리 특정 사건과 관련되었을 때에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니기에, 더 돌발적이면서 분노의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부모는 ‘앵그리버드’ 유형처럼 매사 화를 내진 않습니다.

평소에는 아이의 삶에 크게 관여하지 않다가도 분노의 질주가 시작되면 물건을 부수고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분이 풀릴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어린 아동의 경우, 부모의 입장에 서서 부모가 왜 화를 내는지 조망하는 능력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부모가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 아이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내지 못합니다.


이런 유형은 분노의 스위치가 눌러지면 아이가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든지, 심지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지라도 공격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죠.

아이는 그저 무기력한 채 화풀이 대상이자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맙니다.


아이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폭력으로 처벌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만약 내가 이러한 유형이라면 치료와 상담을 통해 나의 상처뿐만 아니라 아이가 받았을 아픔까지 회복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는 부모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겁니다.

부모가 화를 내고 자신을 멀리 밀어내도 아이는 부모를 향해 다가옵니다.

겉으로는 신경질을 내고 짜증을 부리며 ‘엄마 미워, 아빠 싫어.’라고 말할지라도, 아이의 두 팔은 엄마와 아빠를 향해 있죠.      


나의 분노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와의 사이에 자리 잡은 아픔을 걷어낼 희망이 별안간 찾아옵니다.
부모가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유혹을 이겨낼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인정해 주는 사람은 바로 '나의 아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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