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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Apr 17. 2024

‘용돈, 게임, 외출’ 빼곤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의 마음을 여는 방법에 대해 영화 '인스턴트 패밀리'가 답하다.

오늘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입양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인스턴트 패밀리’를 통해, 마음을 닫은 아이에게 다가서는 지혜를 배워볼게요.      


주인공 피트와 엘리는 낡은 집을 수리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그동안 경제적인 문제와 자유로운 삶을 위해 출산을 미뤄왔죠.  

슬슬 나이를 먹어가자 엘리는 부모가 되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남편인 피트는 이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엔 너무 늦은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위탁부모가 되기로 하죠.      


입양기관에서 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피트와 엘리는 위탁 아동 중 절반 이상이 나이가 차 퇴소한 후에 노숙자 신세로 마약에 중독되고 2년 안에 수감되거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모와 자녀로 만나 '우리'가 되어간다는 건...



사실 부모가 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제 주변에는 입양가정과 싱글맘, 손주를 키우는 조부모와 조카를 키우는 고모도 있습니다.     

 직접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한 건 아니니까요.      


피트와 엘리도 같은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이들은 위탁부모가 되기로 결심하고 교육과정에 참여합니다.


교육을 마치고 시에서 주최하는 위탁아동과 위탁부모를 연결해 주는 행사에 참여하는데요.

그곳에서 ‘리지, 후안, 리타’라는 세 남매를 만나 함께 지내게 되죠.      

 

물론 위탁가정이니 아이들이 입양되기 전까지만 같이 사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인스턴트 패밀리’입니다. 인스턴트식품처럼 즉석에서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뜻이죠.      

사회복지사는 리지는 고집이 세고 남을 쉽게 믿지 않고

후안은 불안하고 감정적인 편이고

리타는 제멋대로 굴고 시끄러운 아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낳은 아이들도 아닌데 과연 잘 지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되죠.      


역시나 갑자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에겐 사건 사고가 속출합니다.      


감정적으로 불안한 후안은 늘 위축되어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하고, 리타는 포테이토칩이 없으면 소리를 지르며 밥을 먹지 않죠. 사춘기인 첫째 리지는 ‘혼자 내버려 두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리지는 마약중독자인 엄마가 10살 때 떠난 후로, 혼자 동생들을 돌봐왔습니다. 아이가 자란 환경을 고려하면 리지의 반항이 이해가 되네요.      


사회복지사는 다루기 힘든 리지를 위해 ‘3R 법칙’을 알려주는데요.      


3R법칙은 조절(Regulation), 공감(Relate), 설득(Reason)으로 이루어진 양육방식인데요.


자, 사회복지사의 조언대로 3R 법칙이 리지에게 통할까요?     


저런, 여러 위탁 가정에서 지내온 리지는 피트와 엘리가 적용하려는 3R법칙이 뭔지 다 알고 있습니다.      

리지는 자신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는 피트와 엘리가 역겹다고 말하죠.


혹시 이런 경우 없으세요?

육아서에서 알려주는 대로 이런 법칙, 저런 대화 방법 등을 모조리 적용해도, 아이는 여전히 말대꾸를 하고 거짓말을 하며 심지어 연락도 없이 집을 나가버립니다.      


이렇게 마음을 닫은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지처럼 위탁가정에 있는 아이뿐만 아니라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돈이나, 물건, 외출 허락(그나마 허락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지만요.)에 대해서만 말할 뿐, 밥을 먹을 때도 눈조차 마주치지 않죠.      


이렇게 아이가 부모와의 교류를 거부하면, 부모가 뭘 해도 안 통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아이가 마음을 닫았다는 건 부모와 소통하는 게 불편하다는 겁니다.

당연히 아이에겐 오랫동안 누적된 불만이 있을 겁니다.


단순히 부모가 갖고 싶은 물건을 안 사주거나, 게임을 못하게 하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가 질이 나쁘다며 같이 놀지 말라고 강요해서가 아닙니다.


아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게 틀렸다고 무시하며 아이의 열등감을 자극하거나, 부모가 정한 틀에 맞게 자라기만 원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기회조차 없이 마음의 감옥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죠.      


만약 친구가 나의 외모에 대해 놀리는 건 잊어버릴 수 있지만, 외모 때문에 내가 싫다고 하면 엄청난 상처를 입습니다. 외모를 놀리는 건 나의 외적인 모습을 비웃는 거지만, 외모로 인해 내가 싫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거니까요.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면, 혹시 부모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분명 부모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을 겁니다.


아이를 학대하는 소수의 부모를 제외하고 의도적으로 ‘너란 존재 자체가 싫어!’라고 표현하는 부모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아이의 특정한 사고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이죠.      


하지만 아이는 그 두 가지가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외모를 놀리는 거랑, 외모 때문에 내가 싫다는 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요.


그러니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자기라는 존재를 미워한다고 믿습니다.      


답답한 상황이죠.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도 소통의 창구가 닫혀버렸으니까요.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는 건, 부모가 아니라 아이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문을 닫았을지라도 갇혀있는 건, 부모가 아니라 아이입니다.


이러다 영원히 갇혀버리는 건 아닐지, 두렵고 답답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아이를 생각해서 부모가 열쇠를 찾아야 하죠.           


이제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볼게요.

피트와 엘리, 아이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어느 날 후안이 네일건에 발을 다치는 사고가 생기자 피트와 엘리는 자신이 당한 일보다 더 괴로워합니다. 리지는 엉킨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주는 엘리로부터 엄마의 손길을 느끼기도 하죠.     


그런데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가 싶을 때, 기다렸다는 듯 친엄마가 나타나고, 리지는 피트와 엘리에게 주었던 마음을 다시 거둬들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조금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 마음을 열 듯하다가, 부모와 상관없이 친구와 다투거나 성적이 떨어지거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부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곤 하죠. 이때 부모의 마음에선 ‘억울하다는 정서’가 차오릅니다.


잘해주려고 애쓰는데 그 마음이 무시당한 기분이 들거든요. 왜 부모만 노력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죠.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트와 엘리는 리지의 축구경기를 응원하러 갑니다.      


친엄마와 위탁부모 사이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리지를 위해 집수리 현장에서 같이 망치로 집을 부수고 새로 고치면서 ‘우리’라는 연대감을 조금씩 형성해가기도 하고요.      


아이는 성장해 가는 중입니다. 특히 청소년기 아이들은 본인도 자신의 감정 변화를 조절하기 힘듭니다.


이럴 때 제가 전에 말씀드린 부모의 ‘반영’이 중요한 거죠.

아이가 격분해서 화를 낼 때 부모가 똑같이 반영해서 분노로 돌려주면, 아이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부모의 사전에 '포기'란 없습니다. '가정원칙'을 기억하세요.


혹시 ‘가정원칙’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내가 원하는 바가 현실이 되었다고 가정해서 행동하면, 바라는 것이 실재가 된다는 법칙’으로, 심리학자인 와이즈먼이 고안한 개념인데요.      


영화에서처럼 아이가 부모와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할 때, 부모는 아이를 앉혀놓고 설명이라는 명분으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겉으로는 3R법칙처럼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부모가 원하는 걸 아이에게 설득하려는 거죠. 아이가 그걸 모를까요?


그러면 아이는 스프링처럼 튕겨져 나갑니다. 멍하니 허공을 보거나 시선을 내리깔고 다리를 떨면서 주위를 분산시키죠. 왜냐고요? 진짜 듣기 싫거든요.      


말했다시피, 이런 방법은 통하지 않아요.      


그러니 ‘가정원칙’을 적용해 보세요.     


먼저 ‘나와 아이는 사이가 좋다.’고 가정해 보죠. 그럼,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아이와 사이가 좋으니 아이에게 친절한 말을 하고, 다정한 태도를 보이겠죠?


둘 사이에 문제가 없으니 굳이 잘못된 걸 지적해서 고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에게서 칭찬거리를 찾을 겁니다. 행여 잘못해도 너그럽게 이해하고요.

   

부모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니, 아이도 예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테죠.

물론 단기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다이어트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나는 아이와 사이가 좋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가정원칙'이 중요한 건, 현재에 문제가 되고 있는 갈등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화해에 목표를 두고 행동한다는 겁니다.


부모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나는 좋은 부모야.’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기고, 아이가 작더라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즐거움과 만족감’이 증가해서 행동이 더욱 강화되죠.


어차피 아이에게 신경질을 내고 소리를 지른다고 아이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면, 방식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생각을 바꾸면 행동도 변화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아무리 의욕적으로 살을 빼고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해도 다음 날이면 입에 치킨을 물고 있고, 담배를 피울 핑곗거리를 찾진 않나요?     


동기나 의욕만으로는 머릿속 생각이 현실이 되진 않습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행동으로 시작해야 해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고 동기가 유발되는 거죠.      


몸무게를 단 1킬로라도 빼거나 하루라도 담배를 피우지 않고 참으면, 다시 1킬로를 줄이고 하루를 더 견디는 게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아이의 마음이 닫혔다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고, ‘가정원칙’대로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좋은 사이야.'라고 가정하고 행동해 보세요.

 

영화에서 피트와 엘리가 자신을 밀어내는 리지를 포기하지 않고 ‘우리는 아이를 사랑해. 우린 아이와 좋은 사이야.’라고 믿으며, 아이에게 매일 같은 미소를 짓고, 응원을 보내며,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처럼요.    

  

그렇다고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조차 미소와 응원을 보내라는 건 아닙니다.

부모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때도 있어야겠죠.

대신 아이가 원하고 불편하지 않을 선에서요. 그 선을 넘으면 간섭이 되니까요.           


피트와 엘리, 그리고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부부는 아이들을 입양하기로 결정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낳아준 친엄마보다 피트와 엘리가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모르는 것도 많지만 혹시 몰라 말해 두자면 나쁜 거나 두려운 것도 우린 감당할 수 있어. 우린 널 사랑하니까.      


등 돌린 아이가 다시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 어쩌죠?     


상상만 해도, 얼마나 큰 절망감이 느껴질지 마음이 아프네요.      


비록 나는 아이의 등만 바라보고 있지만, 아이의 등에도 눈이 있단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가정원칙’으로 변화된 내 행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몇 가지 제안을 하자면,      


먼저, 아이의 마음을 내 맘대로 읽지 마세요.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아이의 마음까지 함부로 들어갈 권리는 없습니다.

섣불리 단정 짓지 말고 아이에게 묻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리고 주름 말고 나의 감정에 보톡스를 맞으세요.      

부모가 짜증과 불안, 분노라는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아이와의 사이는 멀어집니다.

감정을 분출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아이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나의 부정적인 감정에 둔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물질로 보상하지 마세요.      

물질적인 보상은 당장은 효과를 보일지 모르지만, 더 이상 부모가 주는 물질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아이는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며 행동을 바꾸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죠.      


아이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어떤 일을 이뤄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동기를 유발하죠.

그러니 표현이 서투르더라도 마음으로 보상해 주세요.


이때 ‘심리적 보상’이란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인내하는 겁니다.


여기서 '진심'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의 보상이 '미끼인지 진심인지'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부모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아이를 칭찬하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척이 아닌, 짧은 순간이라도 진짜로 아이를 격려하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죠.


영화에서 피트와 엘리가 리지의 감정이 사그라들 때까지 몇 시간을 길거리에 앉아 기다렸던 것처럼, 리지가 다시 나타났을 때 자신들의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리지의 이야기를 들어줬던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다 털어놓은 리지가 웃으며 고맙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사랑이 담긴 시선을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런 '심리적 보상'은 물질적 보상에 비해 아주 오랫동안 효력이 유지된다는 걸 기억하세요.



부모가 묻습니다.      


아이가 마음을 닫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영화 ‘인스턴트 패밀리’가 답합니다.      


나는 자식이지만 너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
그것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잘 모른단다.

하지만 너를 키우며 나쁘거나 두려운 일이 생겨도 난 감당할 수 있어.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나는 이제부터 너랑 좋은 사이라고 가정하고 행동할 거야.
그리고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네가 다시 뒤돌아설 때까지 말이야.

너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부족한 거지, 내 사랑이 모자란 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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