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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Nov 13. 2022

4. 아무도 죽이지 않은 식탁

마냥 힘들기만 한 건 아니랍니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가볍게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서였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고 어렵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채식을 몇 년 동안 지속하고 있으니 주변에서는 많이들 대단하다고 그러는데 사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진다. 나는 정말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건데 말이다. 채식을 시작하고 내 삶이 꽤 많이 변화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때때로 힘들지만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뭔가 여태 힘들고 어려운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이래서야 영업이 되겠는가! 그래서 이 편에서는 채식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제목에서도 썼다시피 채식을 하면 아무도 죽이지 않게 된다. 동물과 고기를 분리하며 살았을 땐 미처 모르고, 아니 어쩌면 알았지만 외면하고 살았던 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일단 해보고 정 먹고 싶으면 다시 먹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내가 이렇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도 어떻게 보면 양심인 것 같다. 나는 도덕적으로 100%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 노력은 하지만 어쨌든 여러 가지에 굴복해 되는 대로 살 때도 많다. 그렇지만 아무도 죽이지 않은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 나의 지속 가능성의 이유이다.


 또 아무래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전보다 한정되다 보니 제철 채소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이번 봄에 두릅을 처음 먹어봤다.(그리고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시는 먹지 못하게 되었지만) 여름엔 뭐니 뭐니 해도 옥수수를 먹어야 한다. 쫀득한 찰옥수수는 물론이거니와 입 안에서 톡톡 튀는 아삭한 초당옥수수는 자칫 때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무는 가을 무가 맛있다. 잘게 채쳐서 들기름 살짝 두른 팬에 볶다가 소금 간만 해도 부드럽고 고소하니 맛있다. 겨울엔 여름에 많이 못 먹었던 시금치를 잔뜩 먹어둬야 한다. 제철이 아니라 맛이 없는 건 둘째치고 여름 시금치는 시장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데쳐서 살짝 무쳐 먹어도 맛있고 된장과 함께 끓여 국으로 먹어도 맛있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졌을 땐 우리 땅에서 이렇게 싱싱하고 다양한 제철 채소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30 년 가까이 살면서 아직도 못 먹어본 신기하고 독특한 식재료들이 참 많다. 채식을 하면서부터 그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이 또 생긴 것이다.


 채식은 나를 요리하게 만든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겨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제는 요리가 먹고사는 문제,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배달 음식이나 슈퍼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만들어 먹을 생각부터 한다. 나는 지금도 감자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감자를 쪄지기를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다. 계란을 넣으면 더 부드럽고 맛있겠지만 감자, 옥수수, 파프리카, 소이마요네즈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오늘도 완전하게 비건을 실천했다는 이 뿌듯함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차려진 한 상을 먹을 때면 내가 나를 대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을 때도 근사하게 먹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초대해도 근사하게 차려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채식은 맛있다. 나는 채식이 먹을  없고 맛이 없다는 누명을 정말 벗기고 싶다. 서울에 많이 밀집되어 있긴 하지만 비건 식당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 요즘은 대기업에서도 각종 비건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채식하면 사람들이 흔히 생각했던(나조차도 가지고 있던) 콩고기의 맛도 기술력이 많이 좋아진 건지 먹으면서도 '이거 진짜 고기 아니야?' 의심이  만큼 식감과 맛이 흡사한 제품들이 많다. 동물성 식품을 대체하기 위해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는 음식들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남산 근처에 위치한 '바이두부' 라는 식당에서는 에그레스 샌드위치라고 달걀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말 달걀 샌드위치와 맛이 똑같은 제품을 팔고 있다. 사람들이 선입견을 조금만 내려 두고 한번쯤 비건 식당에 방문하거나 비건 라면이나 만두  다양한 제품들에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분명 비건의 매력에 퐁당 빠지게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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