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키위 Feb 21. 2023

최소한의 벽은 필요해

 선후관계를 따지기 힘든 문제들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묻듯, 늘 공감이 먼저냐 이해가 먼저냐를 따지곤 했다. 오랜 기간 생각하고 또 얘기해 봤지만, 결국 이해가 선행되어야 공감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이해는 힘들다. 내가 똑같은 경험과 똑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상대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가능할 리 없다. 그러면 공감이 어려워진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느낌 상 무엇을 바라는지는 알지만 확신은  없다. 이 사람이 위로를 원하는 건지, 같이 욕해주길 바라는 건지, 조언을 원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게  조심스러워진다. 이해 없는 공감은 가식이 될 수 있고, 섣부른 공감은 동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와는 다르게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 말이고 글이다. 과하게라도 경계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 두려운 거다. 내가 느끼는 것이 네가 느끼는 것과 같거나 더 크다고 하는 말은 상처를 낸다. 위로나 조언을 빙자한 우월감의 과시는 경계되어야 한다.


  이해나 공감이 어렵다는 걸 느낀 뒤로는 위로보단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곤 했다. 그래도 계속 글을 쓰셨으면 좋겠어요,라든지,  그래도 계속 시도했으면 좋겠다,라든지. 어쭙잖은 이해나 공감으로 말을 포장하고 숨기는 것보다 이기적인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고 내 말을 수용한다. 내가 원하는 게 상대가 원하는 것과 다를지라도, '나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당신과 분리된 나라는 점에서 강요를 느끼지 않는 걸까.


  이타적 이기주의와 이기적 이타주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이타적 이기주의가 좋다. 무엇을 하건 결국 내 경험과 감정 외에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포장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에게 바라는 당신이 있지만, 당신이 그렇게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는 남이니까. 가깝든 가깝지 않든, 때로는 무겁고 가깝지 않다고 느낄 때 관계는 편해진다고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오만과 편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