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
I. 오늘은 집사람 생일이다. 그래서 어제 강화에 있다가 집사람과 저녁 늦게 딸들이 있는 서울로 왔다. 오늘 우리 네 식구가 모여서 점식 식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에서 생일음식을 만드는 경우는 잘 없고 간단하게 아침으로 미역국을 먹고 점심이나 저녁때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생일을 보낸다. 집사람 생일에는 나와 딸들이 함께 미역국을 끓이기도 하는데 오늘 점심은 아예 미역국 전문 식당에서 점심을 하기로 해서 아침 미역국도 생략하기로 했다. 지난번 내 생일 때에는 집에서 케이크를 만들고 미역국도 끓이고 여러 가지 제철 과일들로 한 상을 차렸었는데 집사람 생일에 너무 간단하게 하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한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이니 좀 이른 브런치로 미역국집에 가서 미역국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도 딸들이 꽃다발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II. 어릴 때 생일은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어서 좋았다. 다른 날은 전부 보리밥인데 생일날은 쌀밥을 가득 주고 생선도 있고 김도 있는 그런 밥상에서 온 식구들이 밥을 먹었다. 생일 밥그릇이 워낙 커서 다 먹지 못하고 남은 밥은 장롱 위에 얹어 두었다가 점심때도 그 밥을 먹었다. 물론 생일날만 그랬다. 케이크나 생일 선물 이런 것은 알지도 못했다.
생일날 아침에 어머니는 정성스레 밥상을 차린다. 온갖 나물도 만들고 생선도 굽는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부엌에 차려놓고 우선 조왕신에게 기도하고 다음에 큰 방 윗목에 또 다른 상을 차려서 조상신, 삼신할머니 등에게 정성스레 기도를 한다. 삼신할머니에게 기도할 때 그 상에는 실 한 타래와 가위를 함께 놓았다. 아마 탯줄을 자르는 데 사용한 것이라 가위를 놓았고 실타래의 실처럼 명이 길어라는 취지로 놓는 것으로 추측된다. 각 기도내용은 동일한데 그 신을 부르는 호칭만 바꾸어서 부르면서 기도를 하셨다. ‘영민하신 조상님들, 오늘은 우리 아무개 태어난 날입니다. 조상님들 덕분에 우리 아무개가 태어나서 입혀주고, 먹여주고, 키워주어서 감사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병치레 없고, 항상 웃음이 가득하고, 원하는 것 모두 성취하게 해 주세요’라는 내용 정도는 지금도 기억하는데 실제 어머니의 기도는 이것보다 한 참 길었다. 여기에 당시 상황도 꼭 넣어서 기도를 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하고 형들의 생일에는 사업이나 일이 잘 풀리게 해 달라고 빌었다. 어머니는 기억력이나 암기력이 좋아서 이런 기도를 참 잘했던 것 같다. 동네 아주머니들 중에 이런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어머니에게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뒷집에 살던 작은 어머니도 이런 기도를 잘 못해서 어머니가 가서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큰 딸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병치레도 많이 하고 특히 저녁에 잠을 잘 자지 않고 많이 우니까 어머니께서 통영에 있는 관사로 오셔서 소금을 뿌리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오늘은 집사람 생일이니 나도 기도해야겠다. ‘부모님, 조상님들, 조왕신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집사람이 요즘 어깨가 좋지 않고 아픈 데가 있으니 부디 빨리 낫게 해 주시고 집안사람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