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30. 때 중의 때는 기름때 : 희망의 정체
최근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일상의 루틴이 망가졌다. 눈에 뻔히 보이는 살림살이만 간신히 처리하고 그 외에는 방치해왔다. 지난주로 입시 일정이 모두 끝났고 주말은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이대로 늘어지기 전에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다소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때 중의 때는 단연 기름때이다. 주부라면 모두 공감할 사실이다. 가스레인지, 가스레인지 후드, 오븐 등.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식습관과 게으른 청소 습관이 만나 엄청난 때를 생산했다.
준비물은 튼튼한 고무장갑과 뜨거운 물, 다양한 형태의 수세미와 솔, 그리고 제각기 분야에서 강력함을 뽐내는 각종 세제다. 특히 추천하는 아이템은 바로 ‘뚫어뻥’이다. 뚫어뻥의 엄청난 산성은 기름때를 비롯한 각종 묵은 때에 무척 효과적이다. 다만 냄새가 독하고 호흡 시 유해할 수 있으니 마스크와 환기는 필수다.
가스레인지와 후드의 부속들을 분리해 베이킹소다를 푼 뜨거운 물에 담그고, 오염 정도와 재질에 맞는 세제를 곳곳에 뿌려준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수세미를 버릴 각오로 박박 문지른다. 온 관절이 뻐근해지도록 문질러도 누런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적정선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내가 청소업자도 아니고 뭐.
왜 이렇게 일상을 서둘러 재정비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이번 대학원 입시는 실패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준비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알았어야 할 것을 알지 못했으며, 그나마 아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무척 창피하고 한심했다.
이번 시도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다음 시도를 준비할 각오를 미리 해두긴 했지만, 결과를 보기도 전에 너무나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니 다소의 허탈감이 들었다. 이 허탈감이 일상의 탄력을 해치지 않도록 모종의 조치가 필요했다.
석 달 전 우울함으로부터 일상을 견인하기 위해 화장실 타일을 닦던 나는, 지금은 일상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름때를 닦고 있다. 그 탄력은 다름 아닌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이라는 우중충한 제목으로 적은 지난 30편의 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질적 변화는 양적 변화의 누적으로 가능하다고 믿어왔고, 지금의 일상이 미래의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절망감에 빠졌다. 지난 석 달과 30편의 글은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리고 그 발악 가운데 발견한 것이 바로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
나는 불확실한 단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희망’이었다. 근거의 양과 질은 중요시하지 않는 부도수표 같은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슬프게도 자신이 가졌던 근거를 모두 잃어갈 때쯤 깨져버렸다.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모든 근거를 잃어버렸을 때, 그 절박한 현실에서 내가 기댈 곳은 이제 근거 없는 희망 밖에는 없었다. 부족한 근거와 미약한 꿈이라도 꽉 붙잡고 나를 믿어줘야만 한다는, 그러지 않으면 근거를 갖추기 이전에 자신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희망으로 이끌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희망의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그 자리를 노력과 근거로 대체하는 것, 간신히 확보한 일상의 동력이 바닥나기 전에 미래를 위한 양적 변화를 쌓아가는 것이다. 희망이란 어쩌면 마중물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인 흐름을 끌어내기 위해 빌려다 쓰는 힘, 지금 나는 이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