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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Nov 17. 2022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완결 : 우울에게 감사를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완결 : 우울에게 감사를    


  

최근 이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이 영 불편했다. 몸에 안 맞는 옷 입은 느낌, 옷 뒤집어 입은 느낌. 글이 자연스레 써지질 않아 문제가 뭔지 골똘히 생각해보다 알았다.   


아, 나 요즘 우울하지 않아.   


사실 주제 자체의 한계가 명확했다. 우울이란 평생 때놓을 수 없는 감정이기는 해도, 사람이 평생 우울감에 지배당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우울감에 빠진 기간이 길어진다면 이후에 상담기, 치료기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 전에 우울감과 대승적인 합의를 맺었다.   


결론적으로 우울감도 결국 내 안의 한 부분이었으며, 다소 파괴적인 감정이긴 했으나 그 목적이 절대 파괴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우울의 목소리는 경고였고, 목적은 자신의 재구성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문제들을 직시하고 해소하라는 강력한 요구였다.      



석 달 전 우울은 변기에 앉은 내게 화장실 물때를 보여줬고, 그걸 청소하게 했고, 글로 쓰게 했다. 아침에 규칙적으로 일어나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했고, 끼니를 조금 더 충실히 챙기도록 도와주었다. 우울은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게 하였고 내 내면의 상황에 집중하게 해주었다.    


덕분에 목표를 정할 수 있었고,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상이 회복되고 나니 우울은 자기 역할이 끝났다는 듯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있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 또 언제 이 친구와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지금 나는 더이상 우울하지 않다.      



고로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이라는 제목으로 쓰는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우울감에 괜히 무게 잡으며 쓴 이 억지스러운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향후 최소 6개월 정도는 이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신분이 유지되게 된 이상, 앞으로는 가능한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이야기로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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