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외전1. 나는 우울로 글을 썼구나.
다소 갑작스럽지만 취업이 결정되었다. 계기는 아주 작고 우발적이었다. 당시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자면, 더 이상 X밥 같이 살기 싫었다.
그동안의 구직활동 중에는 다수의 엄격한 기준을 지켰다. 직주근접, 안정적이고 일정한 근무 환경, 일정한 루틴 등. 제대로 된 경력조차 없는 주제에 기준만 엄격했던 것이 과연 양보할 수 없어서였을지, 아니면 이대로 취업하지 않아도 좋다고 내심 생각해서였을지는 공공연한 비밀로 남겨두자.
그렇게 바쁜 현생을 보내다 보니 자판 앞에 앉을 시간이 없…지 않았다. 취업은 결정되었지만, 출근은 명절 이후고. 덕분에 지난 몇 주 아주 마음 편하게 놀았다. 그런데 마음이 편해지니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글을 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우울함을 동력으로 글을 적어왔고, 우울감이 잠시 누그러지니 글이 써지지 않는구나. 글을 쓰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문장 간신히 적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글쓰기에 간절함이 없어졌다. 글을 써서라도 뱉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고갈되었고, 그렇게 쏟아내야 할 감정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 글을 쓰던 시간만큼 못다 한 게임과 못다 본 드라마를 즐기고 있고, 글을 읽던 시간만큼 이사할 집이나 출퇴근 루트 따위를 알아보는 지금의 기분이. 비로소 현생으로 돌아온 것 같은 충족감을 준다.
분량이 너무 적은 줄 알면서도 더 쓸 문장이 생각나지 않으니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해버리자는 이 사치스러운마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