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사랑 나라사랑
우당탕탕 스타트업 적응기
4. 동기사랑 나라사랑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처음이 주는 설레임에 취한 동기들이 내게는 썩 마땅찮았다. 그 분위기를 정확히 대안학교 기숙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보았었고, 따라서 그 말로도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머리만 큰 나는 에너지 넘치는 동기들보다는 사연 넘치는 만학도 선배들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동기들 사이에서 겉돌 때면 따지듯 돌아오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었다. 거기에 대한 내 대답도 정해져 있었다. ‘난 아나키스트야’.
이번 회사에 입사하면서 애인님이 신신당부한 것이 있었다. 제발, 다른 사람들한테 자기한테 하는 거 반만큼만 해. 인간애가 부족한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다. 없는 인간애 다 끌어서 특별한 관계에만 집중하는, 그래서 사람 보는 눈도 높고 인간관계 폭도 좁은 나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원활한 회사생활을 위해 그 당부를 지켜보겠노라고 약속했다.
아주 다행인 것은 우리 회사는 인원이 아주 적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사람들이라 애정을 주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한 번 마음을 열면 다 열어주는 편이라 회사에 더욱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허나 그중에서도 아픈 손가락이 있었으니 바로 입사 동기 되시겠다.
어느 정도 회사의 방향성이 확립된 후 대표님은 자신이 하던 핵심적인 실무를 넘겨주고 확장시키기 위해 각자 다른 역할과 색깔을 가진 두 사람을 채용했고 그게 나와 내 동기였다. 결과적으로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치며 우리는 회사로부터 각각 다른 판단을 받았다.
요즘 대기업 아니고서야 어디든 사람 구하기가 별 따기요, 원하는 사람 얻기란 정말 조상님의 도움 없이는 힘들 정도다. 더군다나 규모가 작은 곳은 사람 하나 채용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리소스와 리스크가 큰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대표님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종종 그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이는 왜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었을까. 비록 대표님과 의견이 다르고, 내 의견이 상당 부분 애인님과의 약속으로 인해 미화되어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내 의견에 대해서만 다뤄보려 한다.
앞서 ‘회사의 채용’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취준생의 취업’도 만만찮게 복잡한 사정이다. 후일 알게 된 바로는 그이는 쓰리잡을 뛰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회사도 알고 있던 비정기적 일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정기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둘 다 시간 할애가 상당했다. 그래야만 했던 사정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어찌 되었건 그이로서는 회사에 할애할 수 있는 자원의 크기가 몹시 한정적이었다. 따라서 회사가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내는데 무리가 따랐다.
이 결과가 그이의 사정에 따른 것인지 혹은 그이의 능력 여하에 따른 것인지는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어찌 되었건 그이는 그 뒤로도 친구로 남았고, 그이가 당시의 자신을 그렇게나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던, 덕분에 이제는 가시권에 들어온 그이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
소위 ‘인연’이라 불리는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은 무수한 변수로 인해 늘 비가시적이다. 인사과정에 큰 힘을 쏟는 기업들도 최근 들어 이 부분을 인식하여 심리검사 등을 활용, 구성원 간의 화학적 작용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해야 할 조치들이 있지 않을까.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회사는 너무 작아서 그 기다릴 여력이 부족했을 뿐, 이라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