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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Oct 29. 2023

우당탕탕 스타트업 적응기 3.

출퇴근 왕복 3시간 반

우당탕탕 스타트업 적응기

3. 출퇴근 왕복 3시간 반

    


평생에 걸쳐 늘 어려웠고 싫었던 것을 하나 꼽으라면 첫째가 대중교통 오래 타는 것, 둘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 둘이 합쳐진 ‘아침 일찍 출근(등교)’는 내 인생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줄곧 직장을 정할 때 직주근접이 가장 우선 조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조건도 내려놨던 것이 엄청난 결과로 다가왔다.     


무려 왕복 3시간 반     


내 일생 중 탑 3 안에 드는 소요 시간이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 이직을 하거나, 이사를 하거나, 심지어 충동적으로 차를 산 적도 있었다. 그나마도 여러 시뮬레이션과 실제 테스트를 거치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 이 정도 시간이었다.           



    

당시 내 출퇴근 루트를 설명하자면, 우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이동한다. 도보 12분. 급할 때는 공유 킥보드를 이용했다. 그나마 이동 시간을 15분 정도 줄여주는 급행 열차를 타려면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만 했다.     


그리고 지하철로 1시간 20분, 32개 역을 이동한다. 대체로 출근 시간이라 큰 환승역에 다다르는 30분 동안은 자리에 앉기 불가능하고, 그 환승역에서도 엄청난 눈치 싸움을 이겨내고 행운이 따라야만 앉을 수 있었다. 만약 앉지 못하면 1시간 20분을 내리 서서 가야만 했다. 심지어 어느 날 운이 좋아 처음부터 앉아서 가게 되는 날이면 중간부터 엉덩이가 아려오곤 했다.     


그렇게 도착역에 다다르면 다시 도보로 25분, 자전거나 전기 킥보드로 10분을 더 가야 비로소 회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심지어 날이 쌀쌀하면 이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살갗이 벗겨질 만큼 시리기에 반드시 장갑, 목도리, 귀돌이, 마스크로 중무장을 해야만 했다.     


나중에야 회사와 신뢰가 쌓여 출퇴근도 좀 유연해지고, 출장이 잦아져 사무실로 출근하는 일이 줄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나중의 이야기. 초반 3개월은 거의 빠짐없이 매일 이 루트를 거쳤다. 6시 반 기상, 8시 귀가. 밥 먹고 상 치우면 바로 잘 준비를 해야하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다시 되돌아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당시의 나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수고로움이 수고롭게 느껴지지 않고, 힘든 일이 기꺼웠다. 마치 처음 사랑에 빠진 청년의 풋풋한 지극 정성처럼, 새로운 취미에 마음을 빼앗겨 지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그 과정이 전혀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최소한 몸 말고 마음은 그랬다. 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그게 가장 중요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하는 대표님과의 1 대 1 면담에서 출퇴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듣고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을 때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게, 안 힘드네? 왜 안 힘들지? 아, 큰일이네. 나 이 회사가 좋아. 반해버렸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늘 신이 나 있다. 몸이 힘든 걸 핑계 삼지 않으려 버둥거리고 촉각을 곤두세우려 노력한다. 새로운 일이,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장소들이 너무나 반갑고 신선하다. 이 마지막 문단과 문장들은 놀랍게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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