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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Oct 27. 2023

우당탕탕 스타트업 적응기 2.

혹시 여기가 말로만 듣던 X소...?

우당탕탕 스타트업 적응기     

2. 혹시 여기가 말로만 듣던 X소...?         


백수 생활 동안 꽤 여러번의 면접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면접은 정말 일생일대의 기로처럼 다가왔다. 지원서에 적었던 내용을 수차례 복기하고 회사에 대해 놓친 것이 없는지 더욱 철저히 조사했다. 네비에 미리 주소까지 찍어보며 최적의 경로와 소요시간을 계산했다. 그런데,     


등록된 주소지와 면접 장소가 다르다...?          


큰일을 앞두고 긴장한 것일까,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실들도 정보처리에 어려움이 따랐다. 왜 주소가 다르지? 변경된 부분이 반영이 안 되었던 걸까? 아니면 내부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걸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심지어 안내받은 주소는 스타트업들이 대거 입주해있는 한 공유 오피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 전 읽었던 글 중 우스개로 써놓은 X소기업의 조건들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분명 공유 오피스였던 것 같은데... 그러나 명백히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이미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기로 마음 먹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지금의 내가 누군가의 처지나 노력의 성취를 평가할 입장이나 되던가?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기로 마음먹고 눈앞의 일에 다시 집중했다.     




그렇게 면접날이 다가왔다. 복장은 고민 없이 정장으로 했다. 예의의 차원도 있지만, 회사에서 내가 MZ스러운 인물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대표님의 옷차림을 보고 잠깐 멈칫했다. 어쩌면 나보다 이분이 더 MZ인건 아닐까.          


면접은 몇 가지 부분에서 무척 예상외로 흘러갔다. 첫째로, 노동조합에서 근무했던 내 이력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동안 겪었던 모든 면접에서 꼭 빠지지 않고 나오던 질문이었다. 호기심 반, 경계심 반. 그러면 나는 마치 ‘내가 이 회사를 무너뜨리러 온 스파이가 아닙니다’라는 변명 같은 이야기들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되려 내가 혹시나 하는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을 정도였다.     

둘째로, 지금까지의 면접 중 지원자인 내가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 회사의 대표 상품의 수익구조, 중장기적 계획, CS 발생 시 대응 원칙 등. 대표님은 내 질문에 빠짐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시간 반 가까운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렇게 1차 면접을 잘 마치고 ‘붙었을까? 아니 떨어졌을거야’를 한 칠백 번쯤 했을 때 2차 면접이 잡혔고, 다시 2차 면접 뒤 똑같은 짓을 일천삼백 번 정도 한 뒤 최종 결과가 나왔다. 그해 설에는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후일담으로, 지원자로서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회사를 분석해 온 것이었다고 한다. 스타트업이고 기존에 없던 사업 아이템을 다루고 있는 만큼, 회사의 구상을 이해하고 임해주는 것이 무척 특별했다고. 나로서야 내 가장 큰 장점을 어필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그게 이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처음이라 되려 얼떨떨했다. 다른 한 편으론 드디어 내 장점이 누군가에게도 장점이 되어주는 곳을 만난 셈이었다.          



첫 출근을 앞두고 새로운 직장에 더 빨리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하...기는 개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백수 생활을 더욱더 최선을 다해 나태하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첫 출근 날짜가 다가왔다. 그리고 시작부터 난관이 닥쳤다. 회사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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