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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해 Apr 13. 2024

잃어버린 나의 언니(2)

그녀의 회피법

 “온 가족들이 나한테만 기댔지만 나는 기댄 적 없어.”


 길을 떠도는 들개 같은 부모와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언니, 그런 언니를 보며 정답을 찾는 나. 언니는 못 배운 우리 부모, 고물상에 물건을 갖다 주며 돈을 버는 먼지가 까맣게 내려앉은 작업복을 입고 집에 들어오는 부모를 보면서도 꿈을 꿨다.

 예체능에서 두각을 보이던 언니는 이미 현역으로 서울의 명문대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과감히 고3 때 진로를 바꿨고 재수를 결심한다. 20살의 언니는 아직 차가운 새벽에 일어나 학원비를 벌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고 으슬으슬한 저녁 제일 마지막까지 학원에 남아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의 지원도 없었는데 예체능을 한 언니, 참 대단하지. 엄마는 언니에게 난 뒷바라지 못해주니 지방의 국립대학교나 들어가라고, 언니는 학원에서 충분히 서울의 명문여대에 들어갈 실력이라 했다며 인서울을 꿈꿨지만, 결국 고향에 남았다.


 언니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나와 언니는 떨어진 실타래처럼 한없이 멀어진다. 학부생 때부터 언니는 활동을 시작했고 주목받는 신인이 되었다. 매일 출장을 다니며 집에 없었고, 그러다 작업실을 핑계로 집을 나갔다. 방 하나를 대학 갈 때까지 같이 쓰며 밤마다 말 거는 소리에 잠을 깨우던 사람은 이제 닿기 힘든 선이 생겼다. 점점 얼굴 보기도 일상이야기하는 것도 년에 손을 꼽게 됐지만 그리운 마음을 토로하다가도 입을 막아야 했다. 언니에게 중요한 건 일, 연인, 친구 제일 마지막이 가족이니까. 오랜 팬은 우상을 멀리서 응원해야 한다.

  대학을 준비하던 나도 언니를 보며 꿈을 꿨다. 글을 쓰는 작가. 하지만 부모를 보며 생긴 ‘안정감’과 ‘평범함’의 거대한 결핍과 욕구는 결국 나를 전문직의 길로 이끌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한때 같은 세상을 공유했던 자매의 세상은 각자 달라진다.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보였던 언니도 기댈 곳은 필요했던 걸까. 언니는 끊임없이 남자친구가 있었고 자취를 하면서 남자친구와 반동거를 했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나에겐 결혼을 전제로 하는 거라며 부모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했지만, n번째가 되자 더 이상 '결혼전제'라는 단어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언니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남자 없이 못 사는 것도 알지만. 애인이 있는 내 친구를 건드리고, 아무렇지 않게 며칠 안 지나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긴 언니의 모습을 보는데.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난,

 "넌 정말 남자한테 미쳤구나?"

 그리고 2년간 언니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현재 언니는 고향집을 수리해 남자친구와 몇 년째 동거하고 있다. 서울살이에 지쳐 고향에 내려왔던 어느 날, 언니의 허락을 받고 어렵게 들어올 수 있었던 나의 고향집. 이곳에 쉬러 내려왔다는 나에게 모호한 표정으로 “신기하네, 나에게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거든.” 그러며 “넌 여전히 눈치 없고 부정적이구나."

 언니, 어릴 때부터 멍청한 난 복잡한 건 감당 못 해. 그래서 너무 헷갈려. 언니를 좋아해 힘든 나는 계속 상처받고 그래서 언니에게 조금만 친절하게, 따뜻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언니, 더 이상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않으니 이제 어깨가 가벼울까. 하지만 가끔은 난 언니가 너무 안쓰러워. 이용하면 모른 척 이용당해 줄 테니 잘 살아야 해. 이제는 없는 나의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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