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엄마
겨울 11월이었다.
언니에 대한 분노가 극, 극, 극에 치달아 나는 언니에게 카톡으로 “언니는 남자에게 미쳤어.” 그 카톡을 읽자 언니는 바로 나에게 전화했고, 흥분한 서로는 좁혀지지 않는 각자의 가치관으로 큰소리를 내며 싸워댔다. 언니에 대한 기대, 무너진 거대한 실망감. 하지만 언니는 되려 나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는 말을 끝으로, 나를 차단하고 수신 거부를 하였다. 며칠뒤 언니의 번호는 없는 번호가 되었고, 전화번호까지 바꾸며 더 이상 언니를 찾을 수 없었다.
절연한 자매는 종종 만났다. 절연한 다음 달 아빠생일에도, 명절에도, 가끔씩 언니가 본집에 놀러 올 때도.
그럴 때마다 언니는 마치 우리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며 장난까지 치는데. 상처받은 나는 언니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어 처음에는 "네가 인간이야? 나를 그렇게 차단해 놓고 지금 뻔뻔하게 뭐 하는 짓이야?" 화를 냈지만, 나의 모습에도 히죽히죽 웃으며 '쟨 또 왜 저래.' 하는 어이없다는 반응이 돌아오니. 그냥 나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며 언니를 만나는 잠깐은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일었지만, 언니를 보내고 나면 여전히 나는 차단당한 상태. 2년을 넘게 언니와 나는 대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나중에는 그런 관계에서도 서로 편안함을 느끼고 만족하며 평화로울 때, 언니는 핸드폰 번호를 다시 알려 주었다.
참 대단한 인간. 나는 그동안 찢어져 무너지고 죽어가다 기어 올라왔는데, 너는 나의 무너져 내린 모습을 지켜만 보며, 내가 어떻게 살던 상관없다는 듯 너무도 잘 살며 뻔뻔히 나를 대하는 모습이.
언니를 수없이 원망하고 욕하며 미워했지만, 사실 난 언니를 너무 좋아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사람.
나의 언니는, 바깥이 새까매질 때까지 유치원에 홀로 남은 나를 데리러 오던 불과 초등학생이던 나의 보호자. 밤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오던 부모 대신 내 옆에 있어 주던 나의 보모. 함께 저녁밥을 먹고 같이 게임하고 만화책을 읽으며 놀 수 있는 언니가 있어 집이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다.
엄마보다 더 엄마 같던 나의 큰 나무. 사는 게 힘들었던 부모는 하루의 마지막을 항상 술로 끝맺고, 취한 부모를 찾으러 가던 소녀 둘. 손을 꼭 잡고 부모의 단골 호프집으로 향하던 밤, 까만 밤 중간에 빛나던 별들.
"엄마 아빠가 싸울 때는 가만히 숨죽여 있다 조용해지면 도서관으로 벗어나는 게 상책이야." 언니는 떠날 때는 가차 없었다. "나 도서관 간다. 너도 갈 거면 지금 따라오던가."
이불속에서 머리만 빼꼼 내미는 나에게 언니는 이미 다 챙긴 책가방을 들고 기다려주지 않곤 바로 나가버린다.
'언니 가지 마. 나만 두고 가지 마.'
그렇게 떠나버린 언니를 바로 쫓아가 버리지 못하고 주방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큰 소리, 엄마의 쪼그라드는 소리, 쿵쿵대는 소리에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최대한 모든 자극에서 멀어지려 한다.
'꿈을 꾸자. 잠을 자면 이건 현실이 아니야.'
언니는 언제부터 강했던 걸까. 엄마가 아빠에게 터진 흔한 날, 그날은 언니와 내가 각 방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두 소녀에게 서러움을 터트렸다.
"너희들, 어떻게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니?"
나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데, 언니는 엄마에게
"엄마, 아빠에게 맞는 거 하루 이틀 아니잖아. 수십 번을 우리는 말렸고, 신고했고, 경찰이 왔지만, 엄마는 아빠랑 계속 살고 있잖아. 우리가 대체 뭘 해줘야 하는 거야?"
초등학생인 언니의 논리적인 말에 엄마는 "그래, 맞네..." 수긍하고 말았다.
언니는 우리 가족 중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언니에게 의지했고, 나의 어른이자 부모의 어른인 언니의 어깨는 너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