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해 Mar 30. 2024

참 빈곤한 엄마

그림자

 

 나는 엄마의 그림자. 융의 분석심리학에 나오는 '그림자'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자아의 한 부분이지만 자아와는 대조되고, 배척되며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모습을 띄기에 자아가 억압하여 무의식으로 내려와 그림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면 양방향의 발전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투사하면 그 대상에게 무작정 부정적인 감정만을 느끼며 비난하게 된다. 투사대상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같은 성별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첫 번째 관문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여야 한다.


 엄마가 너무도 미웠던 것은... 엄마는 아빠를 절대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깐. 엄마에겐 물고 빨아야 할 자식이 아닌 아빠가, 자신의 삶에서 절대 없어선 안 될 존재라는 걸 아니깐.

 그렇게 아빠에게 처맞고도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음날 헤실헤실 웃으며 두 손을 꼭 잡고 잉꼬부부처럼 다니는 엄마가 소름 끼쳐.

 "엄마, 아빠가 너무 싫어."

 "그러지 마.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야. 우리가 이해해줘야 해."

 어린 내가 엄마에게 배운 건, 불쌍한 사람은 나에게 함부로 해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엄마는, 아빠 때문에 힘들었던 불쌍했던 엄마도, 아빠와 같이 술을 먹고 들어와선 아직 어린 자매를 실컷 때렸다. 사고를 쳤으니깐, 엄마말을 안 들었으니깐, 물을 쏟았으니깐.

 부주의한 실수는 순식간에 손이 날아오게 만들었고 모질게도 자식에게 화풀이했던 나의 엄마.

 "엄마, 그래도 우리 씻는 건 좀 챙겨주지 그랬어? 애들이 냄새난다고 우리 주변에 안 다가왔었어."

 "그래, 엄마. 나도 남들은 매일 세수하고 머리 감고 매끼마다 이빨 닦고 하는 거 언니한테 배웠어. 엄마가 우리 키울 때 그런 거 아예 신경도 안 써줘서."

 "그랬니? 난 다 알려줬는데? 기억이 안 난다."

 중학교 때,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었는데 옷에서 냄새가 난다고. 그때 알았다. 남들은 냄새가 나면 빨래를 하는구나. 수건같이 축축해지는 건 바로바로 쓰고 빠는구나. 늘 여러 번 돌려쓰고 한참뒤에야 빨던 우리 집의 청결관념이 더럽다는 것을 그때 깨닫곤 그 후로 수건은 한번 쓰면 바로 세탁기에 집어넣는 버릇이 생겼다.


 늘 못 미더운 나의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자극하는 그림자인 나.

 나는 대가리가 커지며 엄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참 엄마를 많이 닮았다.

 엄마는 사회성이 부족하며 내성적인 성격으로 나도 그런 점을 그대로 빼다 닮아, 엄마는 그런 나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 그래서일까 단체생활에 대한 고민을 들고 오면 공감보다는 핀잔을 줬다. "넌 왜 애가 그러니?"

 외모도 확실히 언니는 아빠, 나는 엄마. 언니는 꾸미는 것에 능숙한데 나는 수더분해서 촌스러운 것이 그런 점도 참 엄마를 닮았는데. 엄마는 자기를 닮은 나보다 아빠를 닮은 언니가 더 이쁜가보다. 유전적으로 쌍꺼풀이 없는 내가 아닌 쌍꺼풀이 있는 언니가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게 어떻겠냐며. 열심히 쌍꺼풀을 만들던 나는 쳐다도 안 보고, 언니의 쌍꺼풀이 좀 더 진하면 더 이뻐질 거 같다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엄마의 모습. "엄마! 나 해달라니깐!"

 엄마는 잔정이 많았다. 길가에 동냥하는 사람에게는 꼭 지갑을 털어 몇천 원이라도 넣고, 절에 들리면 돈도 없으면서 5만 원 넘게 보시는 하고, 받지 못할 돈을 빌려주고, 잘못된 투자로 빚이 생기고, 아빠 말고도 이곳저곳 눈탱이 맞고 들어오면서. 미용한다는 친구의 화장모델이 되어준다고 따라가 밥도 못 얻어먹고 자기돈으로 밥 먹고 들어오는 딸을 보고, 집에 프린트기가 없어 밖에서 인쇄하다 몇만 원씩 날리는 딸을 보고 참 한심하다는 눈빛과 말들. '어디서 이용이나 당하고 멍청해가지고.'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빼다 닮았다. 외모도 성격도.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싫어했다.

 엄마가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이랑 노는데 장난으로 친구를 밀쳤다가 친구가 위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친구는 다리가 부러졌고 가난한 집의 친구는 수술한 돈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말했다.

 "친구가 알아서 떨어진 거야. 넌 민적이 없다고 말해."

 어린 엄마는 외할머니의 성화에, 거짓말을 하였고 결국 수술비를 물어주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어린 엄마의 마음에는 죄책감이라는 흉터가 깊게 남았고, 친구도 선생님도 아버지도 엄마를 외면했다.

 '못된 아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면서 엄마는 유년기를 보냈고,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고 늘 외면하는 아버지에 대해 엄마는 사랑의 깊은 결핍을 느꼈을 것이다. 둘째 딸을 임신한 몸으로, 말기암으로 인해 곧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러 간 엄마는, 너가 못된 아이인 줄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버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서하였다.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에는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은 나날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