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인들한테 코로나 시기에 묻혔던 영화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만든 PPT를 옮겨온 거랍니다. :) 주로 2020년부터 2023년 상반기에 개봉했던 작품들이에요.
참고로 저는 도시환경을 연구하는 분야에 있었는데요. 지도교수님께서 막냉이?셨을 때부터 뵈었건만, 어느덧 곧 은퇴를 앞둔 시기일 정도로 오랜 기간이 흐르다보니 선후배들의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게 퍼져있는 편입니다. 은사님 성향이 다학제를 이것저것 한데 섞어 융복합연구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 성향이시다 보니, 같이 일하기엔 정말 힘들고 토나오지만 나름 저변이 크게 확장되는 장점이 있더군요. 덕분에 저처럼 도시환경이나 도시재생, 지역활성화를 연구하는 지인들 뿐 아니라 정원문화나 치유경관, 생태조경, 전통경관, 북한경관, 사회학, 간호학 심지어는 정치나 신학에 이르기까지 제가 잘 모르는 분야를 연구하는 친구들까지 두루두루 알고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래 리스트에서 이게 왜 여기? 싶은 게 있으실지도... (솔직히 취향상 여기엔 없는 탑건 매버릭과 1917, 엘비스가 제 최애였답니다! :D)
[추천 List]
1. 오토라는 남자
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3. 자산어보
4. 킹메이커(+엘비스)
5. 운디네
6. 애프터 양
7. 고양이들의 아파트
8. 봉명주공
9. 가재가 노래하는 곳(+수라)
10. 쁘띠마망
11. 어디갔어, 버나뎃
12. 커피 오어 티
13. 아임 유어 맨
14. 에펠
★간지 : 파벨만스
1. 오토라는 남자
(2023, 미국, 마크 포스터 감독, 드라마)
매일 동네를 순찰하며 마을의 미관/규칙을 해치는 이들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꼰대 할아버지 오토.
오토는 아내를 잃고 삶의 의미가 사라져 자살을 기도하려던 차, 바로 앞집에 한 외국인 세입자 가족이 들어오는데...
컴퓨터/폰에 의존하는 머저리들이 가득한 세상, 직장에서는 은퇴를 종용하고, 개발회사가 동네 노인들을 양로원으로 내쫒아 집을 사들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사는게 불만인 까칠한 할아버지와 이웃들 간의 이야기.
※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이 쓴 베스트셀러인 '오베라는 남자' 가 원작이며, 2016년에 개봉한 동명의 스웨덴 영화를 미국에서 톰행크스 주연으로 리메이크했습니다.
※ 주인공의 꼰대스러움을 보면서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것은 우연입니다. :D
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2022, 미국, 다니엘스 감독들, SF 판타지+액션+코미디)
중국계 미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SF 멀티버스 개념을 차용하여 똘끼+병맛 가득하게 풀어낸 양자경과 키호이콴 주연의 영화.
허무맹랑한 코미디와 성룡식 액션물을 섞은 B급영화 같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허무주의vs실존주의를 비롯하여 관세음보살, 인연론 등 불교사상이 엿보이는 흥미로운 영상이 펼쳐짐.
아래 포스터처럼 맥시멀리즘의 극치를 달리므로 매우 정신 사나움 주의!
※ 멀티버스(multiverse) : 내가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다른 평행세계가 분기되어 생성된다는 다중우주를 일컬음. 영화에서는 공(空)/선(zen)의 이미지가 주요하게 다뤄집니다.
※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편집상 7개 부문을 석권했는데요. 전통경관을 연구하는 한 후배가 인생영화로 꼽더라구요. :)
3. 자산어보
(2021, 한국, 이준익 감독, 사극+흑백영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되어, 어부청년과 자산어보를 쓰게되는 수묵화+민화 같은 영화.
과거 학문에 통달하였으나 이제는 삶에 밀착한 실학의 세상을 탐구하면서 <자산어보>를 쓰려고 하는 약전, 그리고 어업에 통달하였으나 <목민심서>의 길처럼 세상에 나아가 학문을 펼치고싶은 창대의 이야기.
흑백영화로 조선시대 풍경과 생활상을 담은 영상미가 대단히 유려하며, 서로의 스승이자 제자가 되는 묘한 관계를 엿볼 수 있음.
※ 정약전의 동생 정약용이 쓴 4편의 시, 율정별(栗亭別), 봉간손암(奉簡巽菴), 독소(獨笑), 애절양(哀絶陽)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 유배지는 흑산도가 보이는 도초도의 세트장에서 촬영했으며, 실제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잠시 등장하므로 답사를 가보신 분들은 은근히 반가울 듯 하네요.
4. 킹메이커
(2022, 한국, 변성현 감독, 정치+역사드라마)
故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전략가였던 염창록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정치드라마.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수단-목적’에 관해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선거를 이기기 위해 함께하게 된 이들.
거물 정치인(빛)과 그를 존경하고 따르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책략가(그림자)의 관계를 그림자의 시선에서 써내려간 이야기.
빛과 그림자의 연출을 비롯한 영상미와 수미상관의 편집이 훌륭하며 각종 연설이나 소품의 의미, 애기똥풀의 생약/생태학적 특성을 떠올려보면 좀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음.
참고로 양귀비과의 애기똥풀(Chelidonium majus L.)은 유독성(항암효과)이 강한 약용식물이자, 오염된 토양에서 잘자라는 공해의 지표식물임.
※ 지도교수 vs 대학원생, 혹은 비젼을 갖고 일을 벌리는 총괄책임자 vs 뒤에서 현실적으로 일을 주워 담아야하는 PM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도 괜찮… (으응?)
※ 혹시 극한의 이상주의+완벽주의와 원대한 포부를 쫓아가다 현타를 맞은 대학원생이라면, <킹메이커> 뿐 아니라 끝내 날아가지 못한 <엘비스>(2022)를 보며 해소하는 것도 추천! <위플래시> 못지 않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으응??!! 쉬잇~!)
5. 운디네
(2020, 독일,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로맨스+ 도시계획+ 판타지설화)
도시역사박물관의 도슨트(女)와 산업 잠수사(男) 간의 로맨스 관계에 베를린 개발의 근현대사를 은유하여, 독일 설화 운디네(≒인어공주)처럼 기묘하게 엮어낸 영화.
베를린 궁전의 변천과정, 특히 동독vs서독의 근현대사에 대한 감독의 애환어린 시선이 드러남.
“Form Follows Function” 이란 루이스 설리반의 건축디자인 명제가 나오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기능-형태 간의 적합성이나, 도시의 근원인 물/메기/댐의 상징성, 산업잠수사 모양의 피규어를 통해 전통문화의 계승이란 측면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 개인적으로는 독일제국-동독-통일을 거친 베를린궁을 우리나라 일제강점기후 경희궁, 창경궁의 슬픈 역사에 빗대어보면서, 궁 자체를 도시역사박물관의 도슨트인 여주인공에 대입하여 해석해 보았습니다. 그저 취미생활이던 영화감상이었지만, 꽤 큰 영화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1만뷰 넘기며 인기를 끈 덕에 잘하면 덕업이 일치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 첫 작품이라 애착이 가네요. 비록 동·서베를린을 표상한 게 의미가 있더라도 함부로 해체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도식화하지 말라며 씨네21 기사가 나왔지만, 묘하게 분해서 언젠가 논문으로 써보고픈... :)
6. 애프터 양
(2022, 미국, 코고나다 감독-한국계 재미교포, SF 판타지)
가족처럼 지내온 인간형 AI 로봇이 고장나자, 그와의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마치 차(茶)를 우려내듯이 몽환적으로 담아낸 서정적인 SF영화.
중국계 입양아를 둔 다문화 가족이 각자 공유했던 로봇과의 기억을 헤집어보는 방식.
이를 통해 문화적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는?, 행복과 슬픔이란? 시간과 기억, 그 총체란 무엇인가? 등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보게 만드는 은근히 동양적이고 잔잔한 작품.
영화의 텐션이 매우 느릿하니 졸림 주의!
※ 작품배경 속 식물의 활용방식(플랜테리어)이 메타포로 쓰였으니 눈여겨보면 좋을 듯 합니다. 뿌리가 흙에 박히지 않은 수경재배와 월가든, 이끼가든 등이 나오는데요. 인테리어 소품과 경관이 주제의식과 어울리도록 대단히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는 듯 합니다.
※ 요것도 나중에 논문으로 쓸 수 있을까 상상하던 중 연구실 선배가 이런 컨셉으로 같이 정원박람회 나가볼까? 라는 재미난 꿈을 제안하더군요. :)
※ 졸리지 않을 때! 물과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잎차를 마시는 듯이 이완하며 감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7. 고양이들의 아파트
(2022, 한국, 정재은 감독, 다큐멘터리)
국내 최대규모 재건축단지였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길고양이들의 이주에 관한 다큐.
몇년에 걸쳐 아파트의 변화과정과 둔촌냥이 모임, 캣맘 등의 관련자들을 관찰, 인터뷰하는 과정들이 마치 우리 분야의 연구 과정과 닮은 듯한...
커뮤니티 간의 논란을 피하려다 주제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영화가 고양이처럼 나른해지는 측면이 있는 듯.
매우 의미있는 이슈임에도 자잘한 파편을 툭툭 던져놓는 방식이라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엔딩의 아파트단지 드론 장면은 압권!
※ 故 정기용 건축가의 삶을 다룬 <말하는 건축가>(2012)를 찍었던 정재은 감독 작품이며, 감독님이 꾸준히 건축도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주제의 선정과 영상미가 매우 훌륭합니다. (영화의 플롯엔 쪼꼼 실망했지만요.)
8. 봉명주공
(2022, 한국, 김기성 감독, 다큐멘터리)
청주시 봉명동의 주공아파트가 재개발되면서 주민들이 떠날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 다큐.
사진을 찍어 자신의 집을 추억하고, 가드닝 회원들은 이곳의 생태를 설명하며, 사람들은 건물을 허물기 전 식물을 캐내 이주시키는데, 너무 커져 운반이 버거운 나무는 베어낼 수 밖에...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마을의 흔적과 식물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달픔이 느껴지는 작품.
※ 제18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한국경쟁부문) 수상작으로 장소의 지난 계절과 생태를 보여주며, 인간들보다는 식물의 유언을 담아낸 영화기에 슬픔과 공포감이 짙게 깔려있습니다!
9. 가재가 노래하는 곳
(2022, 미국, 올리비아 뉴먼 감독, 미스터리+드라마)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습지 경관을 배경으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
습지대 바클리코프의 야생에서 문명의 수혜를 받지 못한채 홀로 자연을 관찰하고, 수렵/채집을 하며 자라난 소녀 카야가 한 남자의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되는데...
그녀의 사연을 더듬어보며, 그녀의 야생성/자연스러움에 매료된 남자들과 그녀의 성장담을 엮어낸 작품.
※ 실제 생태학자인 작가가 70대에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했으며, 광활한 습지대의 영상미가 일품입니다. 개인적으로 몇몇 장면은 순천만 습지 답사했을 때가 떠오르더군요.
※ 참고로 소설과 영화 속의 언급은 노스캐롤라이나 습지라고 나오지만, 촬영은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즈 습지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한국경쟁부문) 수상작인 <수라>(2023)는 격리의무가 해제된 뒤 개봉작이라 목록에선 빠졌지만, 습지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을 다룬 다큐멘터리 <수라> 역시 추천합니다!!
10. 쁘띠마망
(2021, 프랑스, 셀린 시아마 감독, 판타지+드라마)
외할머니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 소녀 넬리의 숲속 우정 이야기.
외갓집 근처를 탐험하던 한 소녀가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숲속 오두막을 함께 꾸미고 놀러다니며 정서적으로 교감하게 되는 영화.
실제로 감독이 유년기를 보냈던 파리 외곽의 Cergy-Pontois에서 촬영했으며, 숲의 색감과 빛을 매우 다채롭게 담아냄.
숲과 대비되는 호수 조각공원은 인생/행성의 삶, 시간이란 측면에서 12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활용한 1980년대 작품 ‘Axe majeur(거대한 축)’임.
호수를 가로지르는 축은 파리 에펠탑~샹드막스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영화 속에는 호수 위 피라미드를 탐험하는 모습이 독특하게 담겨짐.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을 찍은 시아마 감독 작품으로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늦가을에 보시는 걸 강추합니다.
※ 제목이 곧 스포일러라 친구의 정체를 알고봐도 좋을 듯 하네요.
번외편
작품성으론 호불호가 꽤 갈리는 애매한 영화였지만 제 전공과 관련있기에 나름 재밌게 봤던 영화들입니다.
11. 어디갔어, 버나뎃
(2020, 미국,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코미디+드라마)
과거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했던 여성건축가(현 주부)의 멘탈 회복 이야기로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
지형을 살리고, 지역의 재료를 재활용하며 기존 식물을 보존하는 등 녹색건축 운동의 아이콘이었던 버나뎃은 어떤 사건의 트라우마로 일을 관둔지 오래되었으며, 사회 공포증으로 인해 문제적 이웃으로 찍혀 점차 사회적 위협이 되어가고…
※ 개인적으로 번아웃+공황장애가 생기면서 저 또한 일을 몇년 쉬었었기에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 남극장면들은 그린란드에서 촬영했으며,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마지막 이미지는 영국 Hugh Broughton Architects와 AECOM이 설계한 Halley Research Station의 모습이랍니다.
12. 커피 오어 티
(2021, 중국, 데렉 후이 감독, 코미디+청춘+드라마)
세청년(우울한 컨설턴트+야심만만한 기업가+이상주의적인 농부)이 노인들만 남은 깡시골(보이차 마을)에서 의기투합하여 커피사업을 창업하는 이야기.
세명의 캐릭터가 잘잡혀있으며, 운남성(윈난성)의 풍경이 상당히 멋드러짐.
비록 평론에선 혹평이 가득하고 썩 훌륭한 작품은 아니지만, 농촌 지역활성화와 관련된 일/연구를 하고있다면 가볍게 즐기기엔 꽤 괜찮은 코미디물. (살짝 병맛 B급코드 + 오글거림 주의)
※ 개인적으로 운남성의 곤명지역 답사때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대만 가수 Eve Ai(艾怡良)가 부른 ost인 <Forever Young>은 가사를 전혀 못알아들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좋아했습니다. 따땃한 봄여름에 보기 좋은 영화일 듯 하네요.
13. 아임 유어 맨
(2021, 독일, 마리아 슈라더 감독, 코미디+SF+로맨스드라마)
페르가몬 박물관의 고고학 박사이자 나이든 솔로인 ‘알마’는 연구비 마련을 위해 완벽한 배우자를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을 테스트/평가하는 실험에 참여하게 되는데...
뇌를 스캔해 그녀의 기억, 취향을 토대로 한 알고리즘으로 탄생한 맞춤형 로맨스 파트너 톰과 3주간 동거를 시작하면서 AI의 존재가치-의존적 관계에 대해 사색하는 이야기.
베를린 박물관섬 안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 밀레투스 마켓 게이트, 퓨쳐리움 전시관, 베를린 외곽의 스판다우숲에서 촬영함. (독일 작품인 만큼 숲의 역할에 대해서 고찰해보길…)
※ 역시나 독일인들의 유머감각은 그닥?이므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며! 비슷한 주제인 <그녀(Her)>와는 매우 다른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요즘 chatGPT를 비롯해 A.I. 분야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지도...
※ 여러모로 촬영 장소의 선정이 주제의식(과거:역사 / 미래:과학 / 자연:신화)과 관련하여 인상깊었습니다.
14. 에펠
(2022, 프랑스, 마르탱 부르블롱 감독, 시대극+멜로/로맨스드라마)
19말 프랑스에서 구스타프 에펠이 철의 여인(La Dame de Fer)이라 불린 에펠탑을 건설하는 일을 과거/현재의 사랑과 엮은 낭만적인 이야기
에펠은 본인의 작품을 의회에 어필하면서 대중+언론의 반발과 파업을 이겨내지만, 예산지원마저 끊기는 와중에 1층만이라도 올리려고 애쓰는데...
에펠탑 건설의 초반부만 잠깐 보여주는게 아쉽지만, 센느강 아래 각기 다른 4방향에서 올라오는 다리 높이를 지상에서 맞추는 시공 방식을 보여주는 게 킬포!
※ 무려 에펠이란 실존인물을 다루면서 건축 과정보다는 가상의 로맨스가 메인스토리이며, 역시 프랑스 영화답게 15세임에도 야함/부끄부끄 주의하세요!
※ 영화vs실화 팩트체크 시리즈글을 영화 커뮤니티에 올린 적이 있는데, 이건 브런치에 옮겨올까 싶군요. :)
★ 파벨만스 / The Fabelmans
(2023,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자전적인 드라마)
어쩌면 최근에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처럼, 시대를 선도한 영화계의 거장이 자신의 어린시절 가족관계와 감추고 싶은 치부들을 들추어내며 자신이 어떻게 작품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의외로 스필버그답지 않은 작은 소품같은 영화지만, 오히려 극적이거나 이상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결말의 스토리라 더욱 사랑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메타포 속에 담긴 '영화를 만드는 법'과 '논문을 쓰는 법' 간에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영화 만드는 법 ≒ 논문 쓰는 법
1. 예술(상상)적인 면(from 어머니) + 과학(기술)적인 면(from 아버지)
2. Control(통제력) : 인생을 살아오며 겪게 된 여러 개인적 경험과 시각들을 잘 정제해서 녹여내야...
3. 편집 그리고 진실 : 잘라서 감출 수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켜 드러낼 수도 있으니, 윤리적 고민이 필요함
4. 주변에의 영향력 : 배우(참여자/연구대상), 관객(독자/심사위원),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킴
5. Perspective(관점!!) : 내 작품/논문이 더럽게 재미있을 수도, 더럽게 재미없을 수도…
요즘엔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썼던 걸 활용해 질적연구 프레임을 만들어보는 중입니다. 그동안 임대 아파트단지를 연구하면서 여러모로 현타가 왔었는데, 마치 <콘트리트 유토피아>처럼 벌어진 역설적인 상황을 한번 제대로 마주해보려구요. 다행히 이상주의자인 지도교수님께서도 이번엔 제가 회의론자 모드가 되어 절 현타오게 만들었던 그눔의 갈등관계를 보고 싶다 했더니 무사히 허락을 해주셨네요!
여튼 워커홀릭으로 몇년간 엄청나게 휘몰아친 뒤 또 몇년간 직무 소진+공황 상태에 빠져있다가, 영화덕질로 인해 깨어나 다시금 본업에서의 제 역할을 모색하는 중인데요. 영화 덕에 논문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으나, 아무래도 최근엔 논문 쓰느라 영화 덕질은 잠시 접고 한창 선행연구에 빠져있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제 영감의 원천인지라 짬내서 서울의 봄이랑, 나폴레옹, 괴물,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챙겨보았던...ㅎㅎ
가지고 있는 데이타(구슬)들을 어떻게 엮어낼지 해석의 프레임을 구상하느라 사회학과랑 현상학 세미나들을 죄다 쫓아댕기는 중인데 역시나 문과계통의 내용은 많이 어렵네요. 질 들뢰즈를 제대로 파보고픈데 어질어질하군요. 연구주제 작업하는 것도 벅찬데 과연 해석의 프레임까지 진행시킬 수 있을것인가...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