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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hira Sep 03. 2023

<운디네> 속에 담긴 슬픈 베를린 도시개발사-1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해석 (스포)

최근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신작 <어파이어>개봉하면서 이전 작품들 기획전이 열렸는데요. 그중 하나인 <운디네>는 여주인공이 도시역사박물관의 도슨트(해설사)베를린궁의 역사가 함께 곁들여진, 마치 인어공주 설화와 같은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전공이 건축, 도시 환경계획 분야라 한 때 홀릭했던 영화였지요. :) 베를린의 근현대 도시개발사가 나오는 걸 보고, 저는 서울 구도심의 비슷한 곳들이 같이 연상되면서 주인공 운디네의 강연내용들이 꽤나 흥미롭더라구요. 
(비록 베를린 궁이 완공되기 전이긴 하지만, 베를린 박물관섬에서 그 전시를 도슨트 없이 관람한 적이 있어요. :D)

아무래도 운디네의 직업 상 도시/건축 역사를 설명하는 대사가 많다 보니, 이 부분이 좀 낯설었던 분들이 계실 듯합니다. 페촐트 감독이 베를린 박물관의 도시모형을 보고 감명 받아서 이 영화를 제작한 만큼, 베를린이란 도시의 역사가 남녀 삼각관계의 모티브가 되는 측면이 있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만 이 영화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나치게 도식화할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그저 극이과형인 건축 전공자의 입장에서 본 하나의 썰이라 여겨주시길... 참고로 전 우리나라 전통 궁궐들이 떠올라 더욱 슬프게 감정이입하며 영화를 감상하게 되더군요.



배경1 : 서울에 빗대어 본 베를린이란 도시


운디네가 일하는 박물관이 있는 베를린의 미테 지역(Mitte=중구)은 우리나라로 치면 강북 지역(종로구, 중구)과 비슷한 곳입니다. 역사가 깊은 오래된 건축물이 많은 지역이자, 동시에 재개발붐이 일어난 곳이지요. 다만 우리나라는 강남을 개발하면서 한양 사대문 안이 졸지에 강북이 되어버렸다면, 미테 지역은 분단기에는 동독서쪽 끝이었으나 통일되면서 다시 베를린 중심부가 된 경우입니다. 중심지였다경계지역이 됐다가 다시 중심지가 된 케이스지요.

2차대전 후 베를린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주거난이 심각해지자 서민들의 집이 필요했고, 사회주의 동독에서는 전쟁 때 폭격 맞은 지역을 허물고 공동임대주택을 잔뜩 지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그 시절의 주택단지들을 재개발하면서 미테 지구의 집값이 엄청나게 폭등해 난리가 났지요. 마치 서울 한강변의 반포~잠실재개발 이슈로 인해 집값이 폭등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보시면 될 듯하네요. 다만, 집값은 가장 높지만 지역의 분위기만큼은 파리의 마레 지구, 뉴욕의 소호 지구처럼 나름 핫플레이스이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사대문 안이었다가 다시금 뜨고 있는 서울의 서촌 지역과도 비슷할 것 같군요.

그리고 운디네는 베를린 궁의 복원(훔볼트 포럼)을 위해 일하는 박물관 도슨트지만, 계약직 프리랜서라 단기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아마 임대료가 어마무시한 미테 지역은 아닐 거에요.) 즉, 특별한 전통 궁궐과는 괴리된 현실의 매우 팍팍하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지내고 있지요.

영화에서 계속 언급하는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베를린궁~브란덴부르크 문'을 잇는 유서깊은 거리 이름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숭례문'을 잇는 광화문로(구 육조거리) 즉 광화문 광장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쉬울 듯 합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과 그 일대가 일제강점기에 축이 틀어지고, 6.25때 폭격을 받아 크게 바뀌게 된 것처럼 운터덴린덴 또한 2차대전 때 완전히 파괴된 것을 동독 정부가 복원했는데요. 한마디로 독일인들의 향수애환이 잔뜩 깃들어 있는 유서깊은 곳이랍니다.



배경2 : 시대변화에 따른 전통 건축의 가슴 아픈 역사


베를린궁(Berlin Palace)의 가슴 아픈 역사는 우리나라의 경희궁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경희궁은 고종 때 경복궁의 재건용 자재로 쓰려고 철거되기 시작했는데요. 일제강점기에 남아있던 전각 5채마저 훼손되어 그 자리는 경성중학교에서 서울고등학교가 되었다가,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와 앉아서 다른 위치에 일부 복원되었습니다. (베를린궁처럼 정문인 흥화문은 뜯겨서 이토 히로부미 추모사찰의 정문이 되었으며, 나중엔 신라호텔 영빈관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그리고 현재 한양 5대 궁궐 중 경희궁은 유일하게 훔볼트포럼과 비슷한 문화재청 관할 박물관이 아닌 서울시 관할 지역니다. (여전히 논란 중...)

베를린궁(프로이센궁)은 1505년~1918년(빌헬름 2세)까지 약 400년 가까이 독일제국의 상징이던 궁전이었으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일부 해체한 후 박물관으로 사용됐습니다. 나치 시절에 철거당할 뻔한 위기에서 무사히 넘어가는 듯했으나, 2차대전 때 폭격을 당하며 많이 훼손되었지요.

50년대에는 이 지역이 사회주의 동독에 포함되면서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며 완전히 철거당하게 됩니다. 대사로 나온 것처럼 연병장과 광장으로 썼다가, 1976년에 모더니즘 형태의 새로운 공화국궁이 세워지지요.

그러나 동서독이 통일된 후, 인체에 유해한 석면 문제로 인해 그걸 또다시 철거하였는데요. 이 영화가 개봉한 2020년! 훔볼트 포럼(마치 우리나라 문화재청의 고궁박물관과 같은 프로젝트)측이 과거 제국시절 모습으로 복원하여 최근에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처럼 전통 건축이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파괴-재생을 반복해오면서 그 존재가치성격이 변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운터덴린덴과 비슷한 광화문로 주변으로 조선의 궁궐이나 4대문 뿐 아니라, 서울시립미술관(평리원▶경성재판소▶법원청사), 조선총독부 건물(폭파▶경복궁 복원), 서울시청 구관(후면 신청사 리모델링) 등 정치/역사적 상황에 따라 처지가 변한 건물들이 가득하지요.



베를린궁/전통건축 : 여주인공의 서사


이 작품은 몇몇 페촐트 감독의 영화들과 비슷하게 여주인공 1명과 남주인공 2명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져있는데요. 저는 '물의 정령, 운디네 설화'를 기반으로 한 여주인공과 남자친구들 간의 잠수-죽음, 회복의 변화과정을 습지를 개발한 도시 베를린에서의 전통건축의 복원 및 도시재생 과정과 엮어서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서울 강북 구도심의 오래되고 멋진 전통 건축물의 처지가 함께 떠오르며,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간혹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있는 이 가엾은 존재들을 연상하며 관람하게 되더라구요.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베를린궁을 은유한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녀는 두 남친과의 만남(시대)에서 각기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구)남친 (현)남친 사이를 오가며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다가, 결국 (구)남친을 죽이고 물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리운 존재로 남게 되지요. 궁전이란 건축물은 도시 임대주택에서의 퍽퍽한 삶(현실)과는 동떨어졌지만, 역사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정령(동화)같은 곳이니까요.

저는 운디네가 나중에 출입금지 당했던 까페에서 수조가 깨진 걸 보, 마치 베를린 장벽을 은유한 것 같다는 인상과 함께 (구)남친은 어쩌면 독일제국~동독시기를 뜻하고, (현)남친서독~통일 후를 뜻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나중에 각 남친들 이름의 작명 유행시기를 찾아보면서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란 생각하게된... :)

개인적으로는 운디네를 볼 때 독일과 비슷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리며, 각 인물과 장소들의 메타포를 아래와 같이 해석해 보았습니다.


⦁ 운디네 : 베를린궁 즉, 전통건축 (≒우리나라 경희궁)

⦁ 구남친 : 빌헬름제국~동독시대 (≒조선~일제강점기)

⦁ 현남친 : 통일후~현대 (해방~현대)

현남친 새애인 : 이민자들과 공존하는 미래

⦁ 현남친 아이 : 베를린궁이 복원된 2020년 이후의 미래

⦁ 미테지역 : 재개발 붐이 일어난 도심 (≒강북+강남의 일부지역)

운터덴린덴 : 역사적 건물이 가득한 거리 (≒광화문로)

훔볼트포럼 : 베를린궁 복원 관련 박물관재단 (≒문화재청 산하 박물관)

박물관 : 도시에 있던 옛 제국시절의 동화같은 삶

⦁ 임대주택 : 도시에서의 팍팍한 현실의 삶

⦁ 까페 : 운디네는 출입금지라... 그럼 혹시 동독시절의 삶?

⦁ 까페 안 수조 : 베를린장벽 (≒해방)

⦁ 기차 : 과거~미래의 조우, 여러모로 의미있게 쓰였기에 진행 방향이나 사운드를 주의깊게 보심 좋을듯요 :D



빌헬름제국~동독/서독~통일이후 : 남자주인공들


영화에 상징이나 비유를 즐겨 쓰시는 감독님들은, 주인공의 이름도 허투루 짓지 않을 거란 생각에 종종 등장인물 이름의 어원을 찾아보곤 합니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님도 네이밍엔 다 계획이 있을 거란 촉에 예전에 이 감독의 7작품 속 주인공들 이름의 어원을 쫙 한번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요. 신기하게도 어원이나 작명의 유행시기가 작품이랑 굉장히 잘 맞아떨어지더라구요. 

(역시나 무서울 정도로 철저한 독일인! ㄷㄷㄷ)

먼저, 제목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인 운디네(Undine)는 문학작품에서 따왔더군요. 16세기 스위스의 연금술사가 쓴 책에 나오는 물의 정령 이름이었는데, 이를 모티브로 소설작가 푸케가 1811년에 인어공주 같은 느낌의 설화를 썼다고 합니다. '물결, 파도(wave)'라는 라틴어 'unda'에서 변형한 거라고 하니, 왠지 베를린 장벽이 깨지고 난 후 시대 변화(남친 교체)의 물결에 휩쓸린 베를린궁(여주인공)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듯합니다.

전 운디네가 신화적인 이름이라면 요하네스는 왠지 클래식한 왕족의 이름 같았고, 크리스토프는 다소 근현대적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득 겨울왕국 생각이... :D) 그래서 전남친/현남친 이름이 유행했던 시기를 찾아봤더니 굉장히 흥미롭더라구요.

일단 남친들의 이름은 서양의 작명이 대게 그렇듯 종교적이었습니다. 전남친인 요하네스(Johannes)는 요한/존의 파생형이므로 "신은 은혜롭다." 란 뜻이고, 현남친 크리스토프(Christoph)"그리스도를 섬기다." 란 뜻이더군요. 뜻은 딱히 신경 안쓴 것도 같지만, 살짝 수동적/능동적이란 늬앙스의 차이가 있는 듯했습니다.

오히려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재밌는 게...

현남친인 크리스토프란 이름은 독일이 통일될 즈음인 1980~90년대 반짝 유행한 이름이랍니다.

전남친인 요하네스란 이름은 무려 빌헬름 제국 시대인 1890 이전~1910년까지 많이 지었던 이름입니다. 그러다가 신기하게도 베를린 장벽 무너질 때 찔끔! 이 요하네스란 이름이 다시 유행했더라구요.

왠지 느낌이 묘하죠?! :D

*출처: The Meaning and History of First Names - Behind the Name


▶ 본격적인 리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운디네] 속에 담긴 슬픈 베를린 도시개발사-2

(형태와 기능, 잠수와 심정지 그리고 피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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