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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Sep 08. 2020

언젠가 렛트의 계절이

  렛트가 배를 보여준다. 그럼 된 거라고 한다. 안정을 찾은 거라고 한다. 행복한 거라고 한다. 오른쪽 발바닥을 뒤통수에 대고 소파 위에서 자고 있다. 아기 천사가 따로 없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렛트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네가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이곳, 내가 설계한 곳이야.      


  그것도 모르고 렛트는 자신의 행복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 양, 내 팔자가 좋아서 그런 것인 양, 나에게 아무런 감사의 표시도 하지 않고 그저 배를 보이고만 있다. 됐다. 괜찮다. 누군가에게 천국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확실한 행복을 얻는다.      


  디라스가 말한다. 

  "렛트가 달아날 때 그건 진짜 달아나는 게 아닌가봐. 숨고 나서 자기 위치를 알려줘. 자기를 찾아 봐 달라는 듯이. 그렇다면 렛트는 우리랑 장난 치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나한테는 안 그러는데."

  "무슨 소리야?"

  "그냥 달아나서 숨어버려. 나에게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다고."     


  백만 번 태어난 고양이가 있다. 

  임금님의 고양이로, 

  뱃사공의 고양이로, 

  마술사의 고양이로, 

  도둑의 고양이로,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로, 

  어린여자 아이의 고양이로,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도둑고양이로,

  태어났다가 하양 고양이를 만나고 살다가 죽고선 다시 태어나기를 멈춘다.      


  이 이야기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닐까.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고양이는 다시 태어난다.      

 

  어떤 종교에서는 우리가 계속 태어나는 이유가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완성하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고양이가 9번 산다고 했는데 사노 요코 할머니는 고양이를 백만 번이나 다시 태어나게 했다. 와일드보다 요코 할머니가 사랑을 더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요코 할머니는 여러 번 결혼하고 여러 번 이혼했고 마지막엔 독거노인으로 배용준이 나오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여러 번의 결혼 중 한 번은 다니카와 슌타로였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안드로메다로 가는 철이 이야기를 다룬 '은하철도 999'를 쓴 사람은 아니고 주제가를 작사한 사람이다. 나는 그가 쓴 시 몇 편을 좋아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20억 광년의 고독'이다. 거기 이런 표현이 나온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렛트는 이제 4개월에 가까워지고 있다. 7개월 정도가 되면 고양이들은 발정기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암컷은 애기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고 수컷은 자기 냄새를 퍼트리기 위해 여기 저기 오줌을 싼다. 발정기란 다른 말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쯤으로 내게 번역되는데 이때가 되면 집고양이들은 사랑할 수 없어서 괴로워진다. 그걸 보는 집주인도 괴로워서 중성화 수술이라는 것을 한다. '사랑할 수 없는 병'으로 전이 되는 것이다. 좋은 점이 있다.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들의 수명이 길어진다. 단명의 이유가 사랑이었다니. 그걸 안 하면 오래 살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근데 그러면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거 아닌가.     


  디라스는 사노 요코의 글을 좋아했다. '사는 게 뭐라고'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작품을 많이 섭렵했다. 그녀가 그것을 읽고 있을 때 귀동냥으로 그녀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무엇에 대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사노 요코와 내가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분명하다. 내 책장에는 '100만 번 산 고양이'가 꽂혀 있었다. 나는 무심하게 그 책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디라스가 사노 요코를 탐독하는데 호기심을 가지고 그 책을 찾아 본 적이 있다. 거기 엽서가 한 장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온이 꽤 올랐네요. 날이 참 덥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선생님의 작품인데, 이 선생님께서 이제 6개월도 채 못 사신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폐암 말기라고 하더군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았는데 여전히 좋더라구요. 

  또 한 사람을 떠나보낸 요즘 황망한 마음을 채우기엔 더 없이 좋은 책인 거 같아서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었구나. 그걸 이제야 발견하다니. 돌이켜보면 대단한 인연들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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