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좋은 글을 현수막으로 걸기로 했다. 오가는 길에 그걸 보면서 마음의 양식을 쌓아보자는 취지였다. 일은 나에게 떨어졌다. 수요일 아침 회의 자리에서 나는 후보들을 발표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 지금 계절에 어울리지만 계절이 지나가 버리면 현수막을 내려야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왼손은 오른 손을 씻고/오른 손은 왼손을 씻는 법이다'. 류근. 협동과 협력을 강조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내가 꽃피는 일이/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꽃은 피어 무엇하리'. 복효근. 나는 이 작품을 밀 생각이었다. 오늘 집에들 가셔서 사모님이나 사부님께 한번 낭송해보세요. 좋아하실 거예요.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친구의 학원에 건 적이 있다. 나는 자식이고 당신은 부모라는 상징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이 작품은 좌파든 우파든, 적이든 동지든 모두 좋아했다. 나는 노선이 다른 두 사장님의 집무실 탁자의 유리 아래에서 이 시를 보았다. 한 직장 동료는 상사에게 크게 깨진 날 상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는데 이 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근데 너무 잘 알려져서요. 너무 흔한 게 단점이었다.
'삐뚤/날면서도/꽃송이 찾아 앉는/나비를 보아라/마음아'. 함민복. 이 시를 읽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다. 누구나 방황을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모두 꽃에 가 앉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함민복의 시는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를 떠오르게 했다. 그의 시에는 이런 것이 있다. '나는 많은 길을 돌아서 그대에게로 갔지만 그것이 그대에게로 가는 직선거리였다'. 공간도 시간도 전혀 일치 하지 않는 삶을 산 두 시인이 결국엔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삐뚤 날아가는 나비의 길도 사실은 휘어진 길이 아니라 직선이다. 늦게 도착해도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