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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Sep 10. 2020

고양이가 없는 이야기-살던대로 살아 간다

  피부병이 있다. 전염병은 아니다. 혼자서 앓으면 되는 병이다. 간지럽다. 긁어서 등쪽의 피부가 까매졌다. 등을 보일 일을 하지 않으니 안심이다. 

  치료할 생각이 없었다.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면 그냥 낳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 

  고치고 싶었다. 최근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저기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약을 먹으면 그때뿐이었다. 그때만이라도 다행이었다. 약이 듣지 않아서 불면으로 지새운 밤이 많다. 약효가 다하고 때가 되면 잠시 나가 있던 병이 다시 들어왔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떤 말도 희망을 꺾지 못했다. 어딘가 나를 치료해 줄 의사가 있으리라 믿었다. 

  한약방에 가보기로 했다. 친절하고 근엄한 분이 문진과 검진을 하고 꼼꼼하게 하얀 종이에 뭔가를 적어나갔다.     


  소음인이군요. 거기 열이 있어서 가려운 거예요. 얼음을 대면 좀 나을 거예요.

  고칠 수 있나요?

  얼마나 되었죠?

  오래 되었어요. 

  그러면 약을 오래 먹어야 해요. 오래 아프면 아픈 몸이 정상이에요. 약을 먹어도 아픈 몸은 아픈 몸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관성 같은 거죠. 10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면 치료하는데 10년은 걸려요. 20년이면 20년이 걸리고.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의사는 증상이 생길 때마다 약이나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손톱을 깎는다. 오래 아프면 아픈 몸이 정상이다. 이상하게 이 말이 위로가 된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당신이 요요를 겪었던 것도 그 때문이고, 항암치료에 성공한 고모부의 몸에 암세포가 재발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살던 대로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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