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 을 보고
얼마 전에 전기포터를 버렸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그걸 살려보려고 분해해보았다. 단순하지만 내게는 한없이 낯선 장면이 그 속에 있었다. 색깔이 다른 선들이 중심을 향해 이어져 있었는데 어떤 걸 어떻게 건드리고 조치를 취해야할지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시 풀었던 것을 조립했다. 처음처럼 정확하게 조립이 되지 않았다. 조금은 어색하게 조립된 물건을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날 한쪽에 놓고 왔다.
"어쩌면 우리가 버리고 온 전기포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디라스가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있었다. 인간을 돕던 헬퍼 로봇이 버려져서 모여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였다. 올리버는 주인이었던 제임스를 찾기 위해,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올리버는 제임스가 1년 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남겼다는 음반을 받는다. 둘은 함께 숲으로 가서 반딧불이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둘 사이에 사랑이 생기는데, 사랑하면 할수록 수명이 다한 걸 알고 있는 그들에겐 슬픔이 생긴다. 그때 클레어가 이런 말을 한다.
"올리버, 너는 음악만으로 만족하는 로봇이었는데."
로봇은 프로그램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올리버는 사람들을 돕는 로봇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 제임스가 죽었다면 제임스의 가족을 도울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제임스의 집을 찾아가지만 남은 가족들은 올리버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한다. 그들에겐 최신 버전의 헬퍼들이 있기 때문이다. 멍청한 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인이 개를 버리고 가면 개는 주인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주인이 버리고 간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주인을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영원히 주인이 찾아올 것 같지 않으면 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고 믿고 주인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런 개가 주인을 만나는 일은 없다.
로봇들은 서로 사랑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로봇의 사랑에 대해선 프로그램에 기록된 바가 없다. 그래서 올리버와 클레어는 그들 사이에 탄생된 사랑이 어색하고 신비하고 행복하다. 올리버가 클레어에게 수명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을 때, 클레어가 올리버에게 수명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을 때 유한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슬픈지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로봇 장례식이 있었다. 노인들이 그들과 함께했던 로봇개를 폐기처분하기 전에 그런 행사를 연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봇개는 망가져갔고 그들을 고칠 수 있는 부품은 단종 되었다.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서 완전히 죽게 된 로봇개의 부품을 아직은 살릴 수 있는 로봇개의 몸에 갈아 끼워 살리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다 그것도 할 수 지경에 이르자 이제 노인이 된 사람들이 젊음을 함께 했던 로봇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인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란 영원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로봇개가 영원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면 굳이 장례식을 치러 줄 필요가 있을까. 인간의 손길과 눈길, 발길이 가 닿는 모든 것에 인간은 영혼의 일부를 남겨 놓는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보다보니 로봇이란 우리가 만지고 쳐다보다 버려둔 영혼을 영원히 간직할 줄 아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버릴 때 마음이 아픈 건 거기 내 영혼의 일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