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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Nov 22. 2020

고리가 왔어요

  


  옥수수는 인간을 떠날 수 없다. 인간을 떠나서는 번식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열매가 떨어지도록 두면 껍질을 비키어 몰래 들어간 바람이 깨문 것처럼 촘촘히 박힌 알들이 엉켜서 서로의 목을 졸라 죽어 버린다.

  옥수수가 처음부터 독립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스스로 번식할 줄 알았다. 그때는 무척 작았다. 작은 것들 중에 큰 걸 고르고 또 그것들 중에 큰 걸 고르는 방식의 선택을 통해 지금 크기의 옥수수가 되었다.      


  길고양이는 인간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인간이 던진 먹이에 길들여져서 사냥 본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사람이 먹이를 놓고 가는 곳에는 길고양이가 나타난다. 시간을 정하면 그 시간에 길고양이는 돌아온다. 길고양이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영역이다. 집들은 다 무너진 재개발 지역에 유독 길고양이들이 많은 것은 인간은 집을 떠나지만 고양이는 집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서진 유리에 고인 물을 혓바닥으로 핥으면서 길고양이들은 거기 남는다.      


  우리 집에 고리가 와 있다. 길에서 어떻게 구조된 고양이라는 것만 안다. 명랑하다. 아주 활발하다. 두두두 뛰다가도 코너를 돌 땐 자기 속도를 못 이겨서 주욱 미끄러진다. 식성이 좋아서 눈이 마주치면 내게 ‘배고파’ 하고 말하는 것 같다. 먹이통에 뭔가 떨어뜨리는 소리가 나면 멀리서도 달려온다. 유인하기가 좋다. 달리기를 좋아하기에 해가 지고 나면 눈에 잠이 깃든다. 반쯤 감기는 눈을 겨우 참으면서 더 놀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고양이는 야행성이라던데 고리는 아닌 것 같다. 나처럼 밤에 잠들고 출근 시간에 일어난다.      


  당신도 무언가 하나쯤은 길들이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애인이든, 아이든, 부모든. 당신이 길들이는 것들은 처음 가지고 있던 어떤 것을 잃고 당신을 통해 다른 것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당신과 하나가 되겠지. 그런 것이 당신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길에서 구조된 길고양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빼앗긴 것일 수도 있다. 폐허가 된 자신의 영역을 지킬 줄 아는 마지막 남은 것일지도 모를 본성. 데려오는 자는 그것보다 나은 것을 줄 수 있을 거라 스스로 다짐했겠지. 임보처가 되면서 누군가 처음 가졌던 마음을 나누어 쓰고 있는 느낌이다.     


  고리는 먹이 경쟁을 하면서 여러 마리와 함께 사는 게 좋았을까. 충분한 먹이와 물을 공급 받으면서 혼자 사는 게 좋을까. 출근할 때마다 고리가 쓸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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