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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실 게스트 하우스

by 카렌

8인실을 이용한 적이 있다.


한 여행자의 기록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다. 그는 진정한 여행자라기보다는 출장으로 해외를 나다닐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1인실 호텔을 이용했는데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 게스트 하우스는 혼숙이야. 서양 여자들은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갈아 입어. 그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하지.


그는 그 재미에 빠져 출장을 가면 반드시 서양인들이 잘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에 투숙했다.


나는 그곳에서 더한 것을 보았다.

그때 게스트하우스는 꼭 찼다. 한국인은 나와 갓 스무 살을 넘긴 여자인 L 둘뿐이었다.

L 의 위층은 백인 남자의 것이었다. 그 남자가 같은 방에 있던 까무잡잡한 여자와 놀다가 늦은 밤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함L의 위 침대로 올라갔다. 잠시 후 뭔가 생각난 듯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미안한데 잠시 나가 줄 수 없을까?


L은 지지 않았다.


- 여긴 내 침대야.

- 그럼 잠시만 귀를 좀 막아 줄래?


위층은 곧 시끄러워졌고 우리는 침묵했다.

L은 가끔씩 위층을 뭔가로 치면서 조용히 하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남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L은 호스트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L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침대 위에 떨어져 있던 콘돔이었다. 위층에서 두 남녀가 사용했던 그것이 잠을 자는 사이 아래로 떨어졌던 것이다.


L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호스트의 표정은 그렇게 진지해보이지 않았다. 흔히 있는 일이며,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말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안 L은 함께 투숙했던 사람들에게 확인했다.


-지난 밤 시끄럽지 않았어요?


그러나 방해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견딜 만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재밌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겨우 나만이 여자의 분노에 한국말로 동조해주었다.


- 짜증이 좀 났었어요.


토스트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있을 때 지난 밤 사랑을 나누었던 두 남녀가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호스트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여권을 건네주었다. 남자는 미국인이었고, 여자는 멕시코 여권을 챙겼다. 그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 넌 어디로 갈 거니?

- 넌?


지난 밤 요란하게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헤어질 참이었다.


지난 밤 L이 있던 자리에 내가 누웠다면 어땠을까.


불쾌했을까? 무시당한 느낌이었을까? 위층의 침대를 쾅쾅 쳤을까? 무료로 제공되는 오렌지 주스를 따라 놓고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그때 내가 가졌던 솔직한 감정은 질투였다. 쉽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사는 것도 하나의 삶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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