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론즈실버 Jun 05. 2023

#25. 애인의 머리를 껴안고 펑펑 울던 날

돌연히 불쑥 그 시간이 생각났다.

'해로(偕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부부가 한평생 함께 살며 늙음'


어릴 땐 부부가 되면 함께 늙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이보다 어려운 길은 없는 것 같다.


브런치에는 왜 이렇게 이혼글들이 많은지. 그리고 그 글들이 얼마나 찢어지는 감정들을 선명하고 얼큰하게 표현해 놨는지. 오전드라마처럼 가벼운 얘기일까 싶어 읽다가, 먹먹함을 주체 못 해 운 적도 많다.  


함께 쿵짝 맞추고 지지고 볶으며 삶의 능선을 같이 넘는 것, 그게 그리도 어렵다.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중략)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중략)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거야



시인에겐 건방지게 느껴질 지언정,

새파랗게 젊은 내가, 연인을 한껏 사랑한다고 느꼈던 순간이 기억난다.


애인은 약 삼 년간 여의도에서 카페를 했다. 8시에 문을 열어 9시에 문을 닫았고, 오픈도 마감도 애인이 했다. 집은 인천 서쪽 끝이었는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일을 했다.


카페 영업시간 동안 그는 건물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여(의도 라)푼젤"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빌딩 지하에 갇힌 그를 보러 내가 갔다. 늦깎이 대학생이던 나는, 강의가 끝나는 6시 즈음에 여의도로 자주 향했다. 그리고 일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과제나, 책을 읽었다.

밖을 나갈 수 없는 라푼젤도, 휘황찬란한 성에 머무는 지는 몰랐겠지. 여푼젤도 그랬다.


카페는 (잘은 모르지만) 가족의 제안으로 시작한 것 같았다. 그는, 사람 만나는 게 싫다고 했다.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삶을 쏟아부을 만큼 진심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얼토당토않게 비싼 임대료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계속되는 적자. 그걸 알면서도 인내했다. 그 와중에도, 힘들다고 내색을 잘하지 않았다. '자신은 무딘 사람'이라며.


우리는 카페 문을 닫고 조그만 조명을 켜고 음식을 시켜 먹었다. 음식점에 가봤자 다른덴 이미 마감일테고, 술을 먹으면 그다음 날 6시에 일어나는 게 불가능할 테니, 우린 그렇게 조촐하게 배달 데이트를 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러다가 내게 힘들다며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빈 카페에서 한동안 애인의 동그란 뒤통수를 쓸고 또 쓸다가, 언젠가 다 지나갈 거라고, 괜찮다고 말하다가, 내 눈물이 퍽 터졌다.


한동안 엉엉 울었다. 안쓰러웠다. 고작 30 초반의 그가, 금전적인 것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그 지점이 유독 마음이 아팠다.

내색 하지 않던 그가 힘들다 하니, 더더욱 마음이 메어졌다.

 

마감을 끝내고 지하에 있는 쓰레기장이 퇴근길의 시작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연애 초반의 짜릿한 순간, 예컨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늦게까지 메시지를 보내며 히히덕 거릴 때, 갖고 있는 자금을 탈탈 털다 못해 12개월 할부로 그에게 선물을 할 때, "엄마 나 오늘 안들어가!" 라고 달랑 말하고 외박을 했을 때, 보다도.


힘들어하는 그 뒤통수를 쓸면서 대신 엉엉 울던 그때,
앞으로 이 사람이 내 앞에서 무너질 때, 삶에서 이게 뭐냐고 하늘에 대고 따져야 할 때나, 마음 메어져서 무릎 꿇려질 때, 대신 엉엉 머리를 껴안고 울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을때,


기쁨보다도 아픔을 함께 하고 싶던 그 때,

이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겠는 걸? 싶었다.


그날이 불현듯 생각난 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을 읽다가  ‘늙어가는 아내에게’ 시와, '그냥 네가 좋아서, 그냥 당신을 사랑해서, 그냥 보고 싶어서, 그냥 내 마음이 움직여서 오늘 하루도 값있게 산다.'

는 그 문장에,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 상황이 돌연히 불쑥 생각났다. (지금 등돌리고 자고 있어 보이는 뒤통수도 한몫했다)




5년 전에, 그는 지하 여푼젤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직장도 그만두고 백수가 된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나와 수영을 새로 배우고, 러닝을 하고, 요가를 함께 하며 체력을 기를 거다. 제주도 가서 결혼 스냅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거다.


작가의 이전글 #24. 남루한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다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