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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Mar 29. 2023

사찰에서 해지면 뭐해요?

몰디브 섬에서 해지면 뭐해요?

내가 사찰에서 지낸다고 하니 주변에서 많이 하는 질문이다. 

실은 몰디브에 있을때도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섬에서 일 끝나면 뭐해요?" 가

"사찰에서 일 끝나면 뭐해요? 로 바뀐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몰디브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옮긴듯하다. 

실은 우리 템플스테이 스님은 내 걱정이 되시나보다. 여기서 지내려면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를 가지는게 좋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나는 그동안 본의 아니게 아침형인간으로 살고 있었다. 그게 나에게 맞기도 하다. 

몰디브에선 낮에 주로 다이빙하고, 손님들과 커피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무슬림 국가로 하루 다섯번 기도시간을 갖는 영향도 있고, 더운 나라라 계속일을 하면 일사병이 걸릴 수도 있으니 적어도 오전/오후 Tea break를 갖는것 같다. 몸을 움직이고, 말을 많이 하다보니 저녁이 되면 방에서 쉬는게 나만의 휴식방법이다. 


보통 직원들은 저녁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며 수다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것 같다. 12시 자정을 넘어서까지 수다가 이어진다. 아마도 각자의 포지션과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니 그게 그들에겐 맞는것이다. 아마도 사회성이 좋은 분들은 몰디브 섬 리조트나 산에 있는 사찰이나 암자에서 지내기 심심하거나 답답 할수도 있을듯하다. 


가끔 다른 부서분들과 회식을 가는데, 사찰에서 읍내가 8km 떨어져있어 그리 멀지 않다. 보통 정시에 퇴근을 하면 저녁을 먹고 나서도 8시가 되기전에 다시 화엄사로 들어온다. 도시에선 이때 저녁식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찰에서도 지내보니 낮에 하는 일들이 비슷하다. 오전엔 사무실에서 예약관련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새로오신 손님들께 방사 안내와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사찰안내를 한다. 생각보다 많이 걷고 말을 많이 한다. 그렇게 걷는줄 몰랐는데, 핸드폰의 하루 걷는 량을 체크하는 앱을 보면 거의 매일 만보 가까이 되거나 넘거나 그렇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이 끝나면 저녁도 이미 먹은 상태이고, 약간은 노곤해지면서 방에서 쉬게 된다. 게다가 숙소가 온돌식이라 따뜻해 잠이 아주 잘온다. 


그래서 핑계같지만 저녁8시가 조금 넘으면 졸리기 시작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정도로 말이다. 내가 아빠에게 매번 하는 잔소리였는데, "아빠, 그래도 9시 뉴스는 보고 자야지" 이제 집에 가면 아빠가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 "딸아, 그래도 9시 뉴스는 보고 자야지"


대신 알람없이 새벽 5시 쯤되면 눈이 떠진다. 그렇다고 눈이 떠질때 바로 일어나는건 아니지만, 이런 뒹글거림이 좋다. 아침 식사후에도 아침 출근까지 3시간정도의 여유가 있어 좋다. 

아침에 좋아하는 커피도 내려 마시고, 음악도 듣는다. 그리고 불교 문화 공부도 조금 한다. 좀 집중해서 길게 해야하는데, 나이가 드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것 같다. 어느정도 일에 적응이 되고 나서는 책도 보고, 일기까지는 아니지만 다이어리에 이런저런 메모도 하고, To do list 도 적어본다. 얼마전부터는 쉬는날엔 마음의 여유가 있어 산책을 간다. 신발신고 나가면 눈앞에 그 유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인 지리산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출퇴근 시간이 1분이란건 참 매력적이다. 가끔 한국에 휴가 왔을때, 보통 서울에서 약속이 있으면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럴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가끔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할때는 그 틈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용기가 없어 1-2대 보낸적도 많았다. 운이 좋아 타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참 돈버는거 힘들지. 우리모두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적도 많았다. 


그래도 힘을 내보자. 

아니, 힘을 좀 빼보자.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듯 사는 것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공을 만들어 어떤 상황이 나에게 와도 의연하게 보낼 수 있게 말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 내 인생이 된다. 지금 이순간의 소중한 시간을 감사하며 사랑해보자. 


몰디브의 리조트 섬도 화엄사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워보이지만, 지지고 볶고 이벤트들도 많다. 이곳에서도 직원들도 스님들도 하루 일과를 마치면 방에 들어가 쉰다. 나의 경우, 그저 장소가 인도양 적도 가까운 섬나라 몰디브에서 국립공원인 지리산 자락 한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P.S 이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와이파이가 잘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구례 지리산에 살고 있지만 전세계 지인들과 여전히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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