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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Mar 26. 2024

비정의 화신, 자베르 페르소나(2)

(레미제라블 등장인물 중)


소설 속 인물탐구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자베르는 이번에는 파리 경찰청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장발장 또한 코제트를 구하여 파리의 변두리에 기거하고 있었다. 큰 도시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베르는 사냥견처럼 발장의 냄새를 맡는다. 부하들과 함께 발장의 은신처를 급습했고 발장은 간발의 차이로 도망을 가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오도 가도 못할 미로에 갇혔지만 깎아지른듯한 높은 담을 타고 어린아이를 밧줄에 감아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곳은 외부와 철저히 폐쇄된 수녀원이었다.


발장과 코제트는 거기서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와중에 6월 혁명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쥐를 쫓던 고양이의 환경이 바꿘다. 바리케이드에서 정부군과 대항하던 혁명세력에 의해 포박된 자베르 형사가 장발장과 또 만난다. 참고로 코제트를 사랑하는 젊은 마리우스와 발장도 젊은 세력들이 주동하는 혁명진영에 참여하게 된다. 발장은 저항군 대장에게 자베르를 죽이겠다고 그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총을 겨눈 체 자베르를 뒷마당으로 끌고 갔다. 자베르가 먼저 말했다. “자 복수하거라”. 그러자 발장은 칼을 꺼냈다. “단도네. 그게 너한테는 더 어울린다”. 발장은 칼을 휘둘렀다. 


자베르의 목 대신 그의 포승줄을 잘랐다. 그리고 말했다. “자 가시오 이제 당신은 자유요”. 자베르는 천성적으로 절대 놀라지 않는 사내이다. 그러나 난생처음 입을 떡 벌리고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발장의 지시대로 묵묵히 몇 발자국을 걸어가던 자베르는 돌연 가던 발을 멈춘다. 그리고 난생처음 발장에게 반말을 하지 않고 말했다. “이것 참 난처하네요. 차라리 그냥 나를 죽이세요”. 발장은 “그냥 가시오” 하고 말하고는 하늘에다 공포를 쏘았다. 그리고는 바리케이드로 돌아와서는 저항군 대장에게 그를 죽였다고 말했다.


이제 조금은 건너뛰고 마지막에 그를 정리해야 한다.

자베르와 발장은 계속 마주친다. 바리케이드 사건은 극의 마지막 장에 해당된다. 이후 발장은 쓰러진 마리우스를 둘러메고 긴긴 파리의 하수도를 헤맨다. 그를 살리려는 본능에서 나온 행위이다. 파리의 하수도는 땅 위의 세상과 거의 비슷한 거대한 세상이다. 나의 개인적 사족을 덧 붙이자면, 하수도는 유고의 소설을 본 이후 파리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찾아가는 스폿이 되고 있다.


그리고 빅토르 유고의 집이다. 보스쥬(Vosges) 광장 근처이다. 2층이 유고가 생존 시 글을 쓰며 기거하던 장소이다. 이 두 곳이 나의 must have 장소이다.

근처에는 프랑스혁명으로 유명한 지명인 바스타유 광장이 인접해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은 아직도 여전히 지하철의 역 이름이나 명소로 잘 기억되고 있다.

함께 파리를 방문한 아내도 유고의 집과 냄새가 조금 나는 하수도를 보기도 했다

.






우여곡절 끝에 센강의 하구에서 벗어났지만 결코 자베르는 항상 발장 옆에 있었다. 천재적으로, 본능적으로 범죄자의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자베르와 발장은 함께 발장이 사는 집을 찾아간다. 발장은 집 앞에서, 여기가 나의 집이니 그다음은 자베르 당신이 나를 처리하라고 말했다. 잠시 후 장발장은 집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자베르에게 잡혀 가려고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자베르는 문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증발한 걸까.


자베르는 바로 그 순간에 강둑을 계속 걸었다. 그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한 범죄자에게 생명을 빚지고, 범죄자와 대등해졌고, 오히려 범죄자는 더 우월한 위치에 섰다. 놀란 일은 발장이 그를 용서한 일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자베르 그가 발장을 용서한 일이다. 기절초풍할 일이다. 발장은 이제 신성한 범죄자이고 사법은 이제 그에게 손을 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발장은 자베르를 당황하게 만들고 그의 관용은 자베르를 압도했다.


처음으로 한 죄수에 대한 존경이 생긴다. 아니 이게 나에게 가능한 일일까. 위대해진 발장 옆에 선 초라한 자기 모습을 보게 되었다. 범죄자의 친절이 이제 자베르에게 그대로 전염되었다.  처음으로 신을 느껴 보았다.

그리고 센강의 하류에 있는 언덕에 그는 수직으로 섰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강둑의 언덕에 놓았다. 잠시 후 무언가 강에 떨어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검은 형상이 떨어졌다.


이제는 이곳이 명소가 되었다. 이야기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 레미제라블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이 뛰어내려 죽은 센강의 촬영지 배경은 영국 웨일스에 있는 베스(Bath)이다. 에이본 강이 흐르는 이곳은 로마시대 목욕 유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교량은 다리 위에 식당과 가게 등이 있는 풀터니(Pulteny) 다리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 다리 위의 식당은 그대로 있었다. 3단의 물계단이 만들어진 아름다운 다리로 물 흐름이 멋지게 보이는 곳이다.


베스는 오래전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그리 많이 오지 않았다. 이제는 엄청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도심의 거리환경도 산뜻하게 달라졌다.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등이 출연한 유명한 신작 영화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 3차례 방문을 했다. 한번 간 곳을 한참 후 다시 찾는 것이 나의 취향이다. 거기서 느끼는 과거의 회상이 좋아서 이다. 아내도 여기에 서서 강둑을 보며 레미제라블 스토리를 회상한 곳이다.



Bath Spa, 조그만한 기차역


모든 것이 혼란 투성이다. 자베르는 장발장에 의해 마지막에 사랑을 실천하려 했다. 어디서 발원했을까. 바로 미리엘 신부가 뿌린 사랑의 열매가 발장을 거치고 그것이 비정의 화신인 자베르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 자신을 죽이는 것은 신에 의지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그러나 달리 그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고 한평생 살아온 신념이 다른 길을 찾지 못했다.


그에 대해 조금 알아보자. 그는 거짓말을 안 한다. 바리케이드에서 밀정 역할을 수행하다 혁명군에 발각되어 구금될 때도 자신을 바로 밝힌다. “너 밀정이지?” “그래, 나는 정부 관료이다”. 그리고 그는 원리를 존중하는 원칙주의자이다. 직업적 소명에 단지 충실할 뿐이었다. 그는 법전에 잘 따르는 로봇이다. 유능한 경찰이다. 유능한 경찰이 어찌 비정하지 않을 수 있나. 그리고 그는 부정한 돈을 챙기는 법이 없고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자신을 규정한다. 부정부패와도 관계없다. 그리고 스스로가 규정한 가치관을 이기지 못하고 센강에 몸을 던지는 그 자신도 불쌍한 레미제라블한 사람 중 하나일 따름이다.


다른 영화에서 조금 원작을 각색한 대사가 기억난다. 자베르가 말한다. “나는 법의 종입니다. 법이 나를 만들었지요”

법이 만든 괴물일까, 준법의 사도일 까는 모두의 판단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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