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an shim Apr 26. 2024

요즘 회자되는 디올백도 교역품(1)

(무역사는 곧 세계사)


최근 무역이야기를 주제로 모임 발표회를 가졌다. 학자가 아닌 무역 실행자이지만 내가 장기간 무역밥을 먹고  그 밭에서 살아왔다.


PS. 발표를 하면서 우선 내가 무역을 말할 정도의 지식과 경험이 있는가를 듣는 이에게 밝혀야 했다. 그래서 나를 먼저 밝혔다. 국제 무역업을 한 지 20년이 지났고 국제무역사 자격과 무역영어 1급 자격증을 가졌다고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처음 무역업을 할 때는 인터넷도 제대로 활성화되기 이전이다. 교역을 위한 연락은 전화, 팩스, 텔렉스나 우편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때로는 전 세계로 발품을 팔며 현지를 가서 내 눈으로 교역할 물건을 보고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 세상을 다니며 교역을 했던 경험과 실적을 말했다. 미국, 유럽, 중동, 아시아를 다니고 물자와 용역을 trade 하고 exchange 한 경험이었다. 항공기 부품을 구하기 위해 많은 나라를 다녔고, 사우디 아라비아는 리야드에 음악분수 건설을 위해 다녔으며 몽골의 공항에 수하물 시설물을 수출하기도 했다. 러시아 최대 자동차 회사에 차량용 부품을 수출하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앉은 책상 주위에 보이는 물건을 바라본다. 손목에 찬 시계도, 외장하드인 SSD, 스탠드, 충전기, 거기다 글을 쓰는 볼펜도 모두 무역을 통해 전해진 물품들이다. 보고 있는 모니터와 키보드 역시 교역의 산품이다. 방금 통화를 마친 스마트폰의 내용 부품이 수십여 국에서 만들어서 교역을 통해 우리에게 편익의 효용을 주고 있다. 무역은 세상을 움직이는 혈관과 같다. 우리 몸과 비유해서 피가 잘 돌면 살고 혈관이 막히면 죽는 것을 알고 있다.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거래와 물물교환은 인간의 본성이다’라고 했을까. 그는 또 교역은 ‘이익을 향한 인간 욕망의 실현과정’으로 보았다.


인간 욕망을 말하니 바로 떠 오르는 인물이 있다. 대항해 시대를 연 콜럼버스이다. 통상 탐험가로 말하지만 실상 크게 이익실현을 추구한 교역 모험가이다. 그의 업적을 기념한 동상은 한때 전 세계에 수십 개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쓰러져 불과 몇 개가 남았다 한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 물자 교환(exchange)의 공헌은 인정해야 한다. 신대륙에서 감자, 옥수수, 커피, 고추와 사탕수수가 그리 인해 다른 세계에 전해졌다. 구세계와 신세계 농업과 경제, 사회까지도 뒤흔든 거대한 사건이다. 물론 교환을 안 해도 좋을 것까지 유통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말한 '총, 균, 쇠'의 균까지 묻어왔다. 바로 매독과 천연두, 홍역 등이다. 


교역은 인류문명의 중심이 되는 축이다. 고대문명에서부터 인류가 현존하는 지금도 그 이후도 교역 없는 세상은 생존이 불가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인류사는 바로 무역사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교역 역사를 알아보기로 하자. 로마의 사례이다. 1-3세기의 로마는 유럽의 19세기보다 더 호화스러운 생활을 유지했다. 최대 부국이었다. 교역의 주 아이템은 무엇일까. 비단과 도자기, 향료, 향신료등이다. 이 중에서 최고의 인기품은 비단이었다. 로마 왕족과 귀족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의류는 없었다. 중국에서도 비싼 비단은 육로로 1-2년이 걸려 로마에 오면 그 가격은 거의 100배 이상의 수익이 생겼다.


그 사치품 수입으로 인해 로마는 보유하고 있던 은과 금이 거의 소진할 정도였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무역역조 현상이다. 심각한 무역역조로 로마의 국력이 쇠퇴하게 된다. 망국의 원인이 되었다. 반대로 중국은 은이 몰려들어 새로운 기관이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로 은행업이 생긴 유래이다. 당시에 은은 요즘으로 말하면 교환 화폐인 셈이다. 만일 금이 주요 교역화폐로 쓰였다면 은행대신 금행이라고 했을 것이다. 기축화폐가 생기기 이전에는 물물교환이 교환수단이 되었지만 이후 은이 화폐를 대신했다.




source : unsplash


당시 세상은 아시아와 유럽이 전부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머지 나라는 교역상대로 의미가 없었다. 물건이 흘러가는 유라시아 무역로를 이야기해보자. 대상국은 중국과 유럽을 가로지르는 무역로이다. 흐름은 동에서 서쪽의 방향이다. 주 아이템은 비단에서 시작했다. 그전에도 있었지만 초기에 2세기경 한나라시대 생긴 무역로이다. 그전에는 약 13,000km 정도 되는 긴 구간을 나누어서 교역이 이루어졌다. 한나라에서 다른 나라 상인에게 물건을 중계하여 파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중계, 연계 방식은 칭기즈칸 제국 시절에 하나의 풀코스 교역로로 연결되었다. 규모 있는 캐라반 상단이 만들어지고 낙타를 이용하여 긴 길이 이어졌다. 이 길은 주 교역품인 비단의 이름을 따서 비단길로 알려졌다. Silk road라는 용어는 독일의 경제학자 리히트호펜에 의해 19세기에 명명되었다. 그는 중국지도를 만들며 이 도로를 작명하였다. 13,000km는 현대적 비행기로도 약 13시간이 걸리는 긴 거리이다. 느린 낙타를 이용하여 사막과 같은 건조지역을 다니는 대상들이 대상단을 이루어 교역로를 만들어갔다.


교역을 적극 장려하던 유목제국은 군대군데 역참시설을 만들고 숙박이 이루어졌다. 시안에서 둔황을 거치고 사마르칸트와 페르시아의 바그다드를 걸쳐 지중해에 오면 다음에는 해상 루트 교역로로 이집트도 로마도 연결되기도 했다. 낙타 외에는 이 운송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축이 없었다. 수백 킬로의 물자를 등에 지고 1-2년을 갈 수 있는 유일한 짐승 운송체였다. 초기 무역에서 유목제국의 역할이 아주 컸다.


정주제국보다 유목제국이 교역에 더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그들에게 교역은 그들 생존의 본질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그들은 외부에서 물자를 조달받아야 그들의 생존과 국가의 유지가 가능했다. 따라서 어떤 때는 주변국과 국경 시장을 열기도 했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약탈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천고마비는 실상 유목제국과 인접한 국경 지역에서는 아주 무서운 용어로 인식되었다. 말이 살이 오르면 약탈을 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말이다.


13세기의 칭기즈칸 시절에 유목제국의 실크로드 교역은 가장 크게 활성화되었다. 나중에는 동서양의 벽을 허무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워싱톤 포스트지는 그를 밀레니엄맨으로 선정했다. 앞 1,0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역할을 한 사람을 선정하는 작업이었다.


육로 교역로는 한때 장해가 발생했다. 바로 7세기에 이슬람제국이 강력해져서 육로 교역의 통과가 불가능했다. 대안으로 해상 교역이 발전했다. 해로는 사실 육로보다 많은 장점이 있다. 해상운송이 훨씬 빠르고 안전하고 무엇보다 운송비용이 저렴했다. 중국 남부의 항구를 떠난 선박은 말라카, 인도양, 페르시아만을 거쳐 홍해, 이집트 또는 유럽을 연결했다. 근래 증기선이 나오기 전까지 해상무역은 계절풍에 의지했다. 시기를 놓치면 계절풍이 바뀌는 시기까지 대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육로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신속했다.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미리 상상해 본 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