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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테시아 Mar 24. 2023

삶의 일부분 속에서 - 모스크

필링 인 터키

      

새벽에 울리던 모스크의 기도 소리에 잠을 깰 때만 해도,

터키의 모스크는 이방인 눈에는 귀찮은(?) 존재의 일부였다.

하루에 다섯 번 울리는 기도 소리는 조용한 여행길에 침묵을 깨기 일쑤였다.     


각자의 모스크에서는 미나래(첨탑)에 확성기를 걸어놓고

그들만의 경전을 읊어나갔다.

서로의 기도 소리가 섞여서 처음 듣는 이에게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터키에서 처음 라마단 기간을 지내는 어느 날,

신은 소음을 경건의 기도 소리로 들리게 하는 귀를 선물로 주셨다.     

소음으로만 느껴졌던 코란을 읽어내려가던

이맘의 목소리는 불경을 말하는 스님의 목소리처럼 들렸고,

축도하는 목사님의 목소리와도 닮아 있었다.

     

세속에 살면서 한 달 동안만이라도 육신의 고통을 느끼며

신의 가르침에 가까이 가려는 무슬림들의 모습을 보아서였을까.

아님, 이방인의 여행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알라의 선물이었을까.     

확성기를 통해 각각의 모스크에서 울리던 기도 소리가 

또렷하게 나눠 들리기 시작했다.


기도 소리가 귀에 들어오자 비로소 기도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어쩌다 말하게 된 터키인에게 

기도 소리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지만,

고어로 쓰인 기도문이라 자신들도 그 뜻을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불경처럼 내려오는 기도문이었나 보다.  

        

기도문의 뜻을 알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기도하는 마음 자체가 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침묵의 유럽 교회나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방하지 않는 한국의 대형 교회와는 달리,

터키 모스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무슬림에게나 여행자 누구에게나 어떤 사람이든

모스크는 안식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니 삶의 일부분이었다.

     

출근하면서도, 혹시 점심을 먹고 난 후, 

더워서, 추워서, 퇴근하는 길에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신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처럼,

삶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모스크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가장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것은     

모스크에서 울리는 이맘의 기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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