꿉꿉한 장마를 즐겁게 맞이하는 법
툭... 투툭... 쏴아아 아. 이제 여름이 시작된다는 걸 온몸으로 알리듯, 하늘은 며칠 전부터 기세등등하다. 자기도 더워서 성이 난 건지, 더운 우리를 식혀주려는 건지,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훌쩍 비가 오지 않는 다른 나라로 여름휴가라도 가고 싶지만, 이번 달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다. 특히나 퇴사를 앞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오래 다녔다 하긴 뭐 하지만, 나름 사람들과 정이 들 만큼 다닌 회사에 석 달 뒤 퇴사하겠다고 전했다.
다들 요즘 애들은 취직을 안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대학 졸업 후 줄곧 쉬지 않고 일만 해왔다. 딱히 큰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일만 하던 어느 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눈앞이 흐려졌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향으로 가야겠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그저 그 생각뿐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있더라도 내야 할 돈은 여전하다. 월급이 들어오면 월세에, 생활비에, 뭐 이리 이것저것 빠져나가는 게 많은지. 해외는커녕 제주도도 꿈같은 소리다. ‘꼬르륵.’ 그래, 내 배는 늘 눈치가 없다. 소개팅이든, 중요한 미팅 중이든, 비 오는 적적한 날이든—가리지 않는다. 참 공평하다. 비 오는 날엔 배달시키기도 뭣하고, 밖에 나가자니 굵은 빗방울을 보니 엄두가 안 난다. 결국 집 냉장고를 뒤적이다가 엄마가 보내준 김치를 꺼낸다. 매일 먹어도 혼자 먹으니 양이 줄지 않아 이젠 푹 익어버렸다. 마침 비도 오고, 이 잘 익은 김치로 전을 부쳐 먹기로 한다. 부침가루도 다 써버릴 겸 큰맘 먹고 냉장고 재료를 탈탈 털어 죄다 부쳐 먹어야겠다.
볼을 세 개 준비하고, 한 곳엔 김치를 가위로 슥슥 썬다. 한쪽엔 부추와 냉동해 둔 해산물 모둠을 담고, 나머지 하나엔 감자를 삶아 으깬다. 부침가루에 물을 눈대중으로 넣고 대충 반죽을 만든다. 김치랑 부추를 넣어둔 볼에 반죽을 부어 섞는다. 팬에 기름을 넉넉히 붓고 한 국자씩 전을 떠서 팬에 올린다. 지글지글, 팬 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여 어느 것이 전 부치는 소리고 어느 것이 빗방울 소리인지 모를 만큼 어우러진다.
어릴 적엔 장마가 시작되면 엄마는 꼭 전을 부쳤다. 비가 쏟아지면 주방에 기름이 튀지 않도록 신문지를 덧대고,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은 눅눅했지만, 기름 냄새로 가득 찬 부엌은 유독 따뜻했다. 전을 유독 좋아한 나는 그 냄새와 소리에 설레어 저녁도 먹기 좋아 옆에서 손으로 날름날름 전을 주워 먹곤 했다.
또, 큰 전을 휙휙 뒤집는 엄마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몇 번 따라 해 보다가 전이 접히고 찢어지길래, 그 뒤로는 자그마한 전을 만들었다. 크기야 작지만 보기엔 더 예쁘다며 가족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지금도 난 그 작은 전을 굽는다.
노릇하게 익은 가장자리에서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면, 젓가락으로 살짝 들어보고는 다시 눌러 굽는다. 전이 다 구워질 즈음,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낸다. 잔 하나와 수저 한 벌을 꺼내며 문득 생각한다. 하나뿐인 수저 세트를 바라보며, ‘원래 어른이란 이런 걸까?’ 내가 꿈꾸던 어른의 삶, 회사원의 삶은 이렇게 조용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을까. 대학생 때는 고향에 가면 사흘을 못 버텼다. 지루하고, 심심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하루를 넘기면 질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지루하고 심심한 고향이 간절하다.
우리 집은 전을 초장에 찍어 먹었다. 나에겐 너무 당연한 방식이었다. 새콤달콤한 초장은 기름진 전의 맛을 깔끔하게 잡아줬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야 알았다. 전을 초장에 찍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걸. 친구들은 다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그때 처음, 우리 집이 좀 특이한가 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초장을 꺼내 든다. 그건 내 입맛이고, 나의 집이었다.
막걸리를 잔에 따르니 새하얀 거품이 넘칠 듯 일렁인다. 한 손에 전을 들고, 바삭한 한 입을 베어 문다. 따끈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어정쩡한 어른이가 만든 이 작은 전. 바삭하고 촉촉한 이 전은 어른의 맛이면서도 어린 시절의 맛이다. 이 전처럼, 나도 아직 뒤집히기 직전인 걸까. 아직은 굽고 익히는 중. 조금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나도, 내 인생도, 천천히 노릇해지길 바라본다. 고향에 가면, 엄마랑 다시 전을 부쳐야지. 그땐 둘이 먹으니 수저 세트도 두 개겠지.
가루 비율 (기본형)
부침가루 2큰술
튀김가루 1큰술
전분 0.5큰술
물 약 70~80ml
→ 너무 묽지 않게, 걸쭉한 반죽 농도가 좋습니다.
→ 재료에 수분이 많을 경우 (ex. 김치, 감자 등) 물은 조금 덜 넣는 것이 좋아요.
재료: 새우 40g, 부추 70g, 홍고추 1/2개, 튀김가루, 전분, 물 150ml, 맛소금, 후추
1. 새우는 씻어 잘게 썬다.
2. 부추는 씻어 자른다.
3. 홍고추는 씨를 제거하고 채 썬다.
4. 튀김가루 + 전분 + 물로 반죽을 만든 후 재료를 넣고 섞는다.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부친다.
재료: 김치 150g, 쪽파 20g, 청양고추 1/2개, 튀김가루, 전분
1. 김치는 가위로 작게 자른다.
2. 쪽파는 길게 썬다.
3. 고추는 어슷 썬다.
4. 튀김가루 + 전분 + 물로 반죽을 만든 후 재료를 넣고 섞는다.
5. 팬에 부쳐 노릇하게 익힌다.
재료: 감자 1개, 전분 1T, 치즈 1장
1. 감자는 껍질을 벗긴 뒤 작게 잘라 푹 삶아준다.
2. 삶은 갑자는 으깨어 소금, 후추로 간한 뒤 전분을 섞어 반죽한다.
3. 동그랗게 완자 모양으로 빚은 뒤 눌러 안에 모짜렐라 치즈를 넣는다.
4. 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부친다.
5. 취향에 맞게 체다치즈를 전 크게에 맞춰 올린다.
재료: 간장 2T, 식초 1T, 물 1T, 설탕 0.5T, 다진 마늘 0.5t, 쪽파 약간, 참기름 약간, 깨소금 약간, (선택) 다진 청양고추 약간
만드는 법: 모든 재료를 작은 그릇에 넣고 잘 섞는다.